방법이 달랐다. 양산차와 콘셉트카 비율을 적절히 섞어 풍성한 무대를 펼친 토요타와 다르게,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는 미래 전략에 집중했다. 차세대 BEV 콘셉트 모델인 LF-ZC와 LF-ZL이 그 주인공. 전동화와 고급화, 사용자 맞춤형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앞으로의 렉서스가 추구할 방향성이 모두 담겨 있었다.
글 서동현 기자(dhseo1208@gmail.com)사진 렉서스, 저팬 모빌리티쇼 2023, 서동현
모터쇼에 참가한 자동차 제조사들은 부스를 꾸미는 데 진심이다. 브랜드 로고가 없어도 해당 제조사임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특색을 잘 살린다. 가령 MINI는 휘황찬란한 조명과 글씨로 발랄함을 표현하고, 메르세데스-벤츠는 블랙과 크롬을 조합해 중후하고 화려한 느낌을 낸다. 포르쉐는 레이스카 공간을 별도로 나눠 모터스포츠 양산차와의 기술 연결성을 강조한다.이번 저팬 모빌리티쇼 2023에서 브랜드의 색깔을 배경에 가장 잘 녹여낸 곳은 렉서스였다. 나무 기둥들을 천장을 향해 세워놓고, 각각의 방향을 부드럽게 비틀어 물결치는 듯한 모습을 구현했다. 올 블랙으로 뒤덮은 바닥과 무대 위엔 은색으로 반짝이는 콘셉트카를 세웠다. 초대형 스크린에는 벚꽃잎이 흩날렸다. 일본의 동양적 느낌을 고급스럽게 풀면서 브랜드 컬러도 명확하게 표현했다.
프레젠테이션은 렉서스 디자인 및 브랜드 총괄인 사이먼 험프리스(Simon Humphries)가 맡았다. “4년 전, 여러분께 2035년까지 100% 전동화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희는 순수 전기차만의 특성 덕분에 고객 경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날 거라고 믿습니다.” 인사말이 끝난 뒤, 앞으로의 전기 렉서스를 대표할 LF-ZC 콘셉트가 등장했다.LF-ZC의 뜻은 ‘Lexus Futur Zero-Emission Catalyst’. 걸출한 드라이빙 성능과 완벽을 추구한 디자인, 고객 맞춤형 서비스 등으로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경험을 위한 ‘촉매제(Catalyst)’가 되겠다는 의미다. 제품화를 거친 양산 모델은 2026년 데뷔한다.
뒤이어 럭셔리 플래그십 클래스를 지향하는 LF-ZL(Lexus Futur Zero-Emission Luxury)도 나타났다. 모빌리티와 사람, 사회를 연결하는 ‘맞춤형 고객 상호작용’으로 특별한 운전 경험을 제공할 전망이다. 더불어 고객이 자신의 니즈를 충족하면서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하고 깨끗한(Guilt-Free)’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목표 공력계수 ‘Cd 0.2 이하’, 효율까지 살린 과감한 디자인
디자인 테마는 ‘도발적인 단순함’이다. 서로 반대되는 듯한 두 단어가 만나 렉서스의 아이덴티티가 진하게 깃든 외모를 완성했다. LF-ZC엔 스핀들 그릴에서 진화한 ‘스핀들 보디’ 디자인과 고유의 L자형 헤드램프가 그대로 들어갔다. 대신 내연기관보다 부피가 작은 전기 파워트레인의 이점을 활용했다. 보닛을 납작하게 누르고 앞 유리와 지붕, 뒤 유리까지 매끈한 하나의 선으로 이어 공기저항을 줄였다. 옆에서 바라보면 뒤로 쏠린 듯한 비례와 부풀어 오른 리어 펜더가 긴장감을 더한다. 목표 공기저항계수는 무려 Cd 0.2 이하. 길이×너비×높이는 각각 4,750×1,880×1,390㎜며, 휠베이스는 2,890㎜다.
LF-ZL은 디테일에 더 힘을 썼다. 헤드램프와 앞뒤 범퍼, 도어 패널 하단, 보조 제동등에 촘촘한 빗금을 새겼다. 지붕에는 유기적인 형태의 육각형 패턴을 그려 넣었다. 측면 실루엣은 LF-ZC와 비슷하나, 더 굵은 선과 치켜 올라가는 2열 벨트라인으로 차의 성격을 구분 지었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5,300×2,020×1,700㎜. 휠베이스는 3,350㎜다.전통과 신기술로 꽉 채운 실내
실내에는 디지털화한 ‘지능형 콕핏(Intelligent Cockpit)’을 적용했다. 운전대 양쪽으로 스마트폰 크기의 디스플레이를 배치하고, 동승석에 태블릿 PC만한 모니터를 두 개 연결해 얹었다. 왼쪽 패드에는 변속과 ADAS, 주행모드 등 주행 관련 기능을, 오른쪽엔 음악과 온도조절, AI 기능을 배치했다. 나머지 정보는 앞 유리에 투영해 전방 도로를 주시하도록 설계했다. 여기에 렉서스의 새로운 소프트웨어 플랫폼 ‘아린(Arene) OS’를 심었다. 운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학습해 맞춤형 기능을 제안하며, 다양한 인프라 및 서비스 통합을 지원한다. ‘인터랙티브 리얼리티 인모션(Interactive Reality in Motion)’ 기능은 차의 온보드 센서와 실내 디스플레이를 연동한다. 운전 중 관심 있는 사물 또는 장소를 가리키면 디스플레이가 감지, 해당 정보를 음성안내로 제공한다.
RZ에 적용했던 기술도 이어받았다. 운전대와 앞바퀴의 물리적 연결을 해제한 ‘스티어 바이 와이어(Steer-by-Wire)’다. 랙&피니언 기어 대신 전기 신호로 조향하는 방식이다. 장점은 공간 활용성과 콘텐츠의 증가. 특히 정차 중에는 운전대만 돌려가며 레이싱 e-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무선 업데이트(OTA) 기술도 넣어 꾸준한 즐길 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인테리어 대표 소재로는 대나무를 골랐다. 일본에선 건축 및 공예 분야에서 오랜 세월 써온 재료다. 빠른 성장속도와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 고급스러운 질감이 특징. 대나무 섬유와 실로 엮어 만든 패브릭을 LF-ZC 도어 패널 안쪽에 씌우고, 내부에 LED 조명을 깔아 다채로운 실내 분위기를 만들었다.
LF-ZL은 한술 더 뜬다. 통째로 깎아낸 나무를 그대로 덮어 따뜻하고 화사한 색감을 살렸다. 센터콘솔과 대시보드, 2열 헤드레스트 주변에도 목공 장인의 손길이 스쳤다. 또한 뒷좌석을 강조한 모델인 만큼 앞뒤 시트 컬러를 차별화하고, 포근한 느낌의 소재들로 탑승객을 아늑하게 감쌌다.고성능 각형 배터리로 장거리 운행 부담 줄인다
렉서스는 양산 예정인 LF-ZC의 주행거리가 기존 순수 전기차의 2배라고 예고했다. 비결은 새 배터리. 공기역학적 기능과 경량화를 이룬 차세대 각형 고성능 배터리가 들어간다. 무게는 줄고 밀도는 늘어 배터리가 차지하는 공간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비교적 유연한 차체 설계가 가능하며, 디자인 자유도도 올라간다. 더욱 낮은 무게중심도 장점. 고성능 배터리는 ‘기가캐스팅(Gigacasting)’ 기법으로 제작한 차체에 결합한다. 자동차 뼈대의 앞, 중간, 뒤를 통째로 찍어내는 방식이다. 여러 프레임 부품을 용접으로 잇는 방법보다 강성이 높아 안전성과 운동성능 면에서도 유리하다. 배터리를 연결하는 과정도 편리해 개발 및 조립 속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현재 테슬라가 이 방식으로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
렉서스는 경계와 규칙을 허물어왔다. 34년 전 브랜드 탄생 순간부터 그랬다. LS400으로 기존 플래그십 세단 시장을 뒤흔들며 경쟁자들에게 위기감을 안겼다. 토요타의 치밀한 계획이 제대로 맞아들어간 순간이었다. 아울러 남다른 고객 대응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고객 서비스를 선보였다. 당시 유럽 브랜드의 단점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보완했다. 이번 렉서스의 슬로건 ‘전동화의 경계를 허물다(Pushing the Boundaries of the Electrified Experience)’에선 브랜드 존재감을 회복시키겠다는 각오가 보인다. 그 의지를 LF-ZC와 LF-ZL로 구체화했다. 프리미엄 제조사들이 전동화에 대응할 저마다의 전략을 발표하는 가운데, 렉서스의 전동화 플랜이 브랜드 창립 초기의 파도를 다시 한번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