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모터스코리아가 지난 16일(목), 서울 동대문구에 자리한 벤틀리 타워에서 ‘벤틀리 디자인 토크’ 행사를 진행했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1~3세대 컨티넨탈 GT의 변천사뿐 아니라 앞으로 벤틀리의 디자인 방향성을 소개했다.
글 강준기 기자(joonkik89@gmail.com)
사진 벤틀리모터스코리아, 강준기
모터스포츠 DNA
벤틀리 3리터
아마 많은 소비자들이 벤틀리를 벤츠보다 비싼 ‘력셔리’ 브랜드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표현이다. 사실 벤틀리는 뼛속부터 모터스포츠 전문 제조사다. 창업주 오언 벤틀리는 직접 차를 개조해 경주에 참가한 엔지니어이자 레이서였다. 당시 프랑스 DFP 자동차를 팔던 형 호레이스와 손을 잡고 1919년, 그의 꿈 이룰 벤틀리 모터스를 세웠다. 벤틀리는 첫차 ‘3리터’를 앞세워 르망 24시로 향했다. 운전대는 ‘벤틀리 보이스’라고 부르는 6명의 선수가 잡았다. 이들은 1924년 첫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1927년부턴 6기통 엔진 얹은 스피드 6(식스)와 함께 4년 연속 챔피언에 올랐다. 1930년,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맞닥뜨린 에토레 부가티는 벤틀리를 향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차”라며 울화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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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스피드 8(에잇)로 68년 만에 르망 24시 내구레이스 무대에 복귀한 벤틀리는 2년 뒤 우승했다. 이후 컨티넨탈 GT3를 앞세워 각종 레이스에서 약 50차례 우승을 따냈다. 이처럼 벤틀리 역사에 있어 모터스포츠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퍼포먼스-럭셔리 브랜드 혹은 럭셔리-퍼포먼스 브랜드, 둘 중 어떤 수식어가 앞에 와도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디자인 DNA
벤틀리 R-타입 컨티넨탈
컨티넨탈 GT, 플라잉스퍼, 벤테이가…. 현재 판매 중인 벤틀리 주요 라인업에서 살필 수 있는 디자인은 몇 가지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다. 네 개의 원으로 구성한 헤드램프, 커다란 콧날과 길쭉한 후드, 그리고 두툼한 뒷바퀴 펜더다. 멀리서 봐도 한 눈에 벤틀리 식구임을 알 수 있는 주요 단서다. 시작은 1952년, 코치빌더 뮬리너가 제작했던 R-타입 컨티넨탈이었다.
본래 R-타입은 마크VI를 대체하는 모델. 롤스로이스 실버 던과 같은 섀시를 나눠 쓰는 최고급 승용차였다. 당시 영국의 코치빌더 뮬리너는 R-타입을 가져와 고성능 4인승 모델을 만들었는데, 이 차가 바로 R-타입 컨티넨탈이다. 현대 벤틀리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다. 길쭉한 후드와 뒷바퀴를 감싸는 두툼한 펜더, 날렵한 루프가 대표적이다.
크리스티안 슐릭 벤틀리모터스코리아 총괄상무(왼쪽) / 에디 어 벤틀리모터스 디자이너(오른쪽)
R-타입 컨티넨탈은 자동차 디자인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개발을 맡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는 풍동시험장에서 스타일을 완성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로 이름을 알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뮬리너 외에도 피닌파리나와 제임스 영, 파크 워드 등 다른 코치빌더의 작품도 있었지만, 뮬리너가 가장 빠르고 매력적이었다. 1959년엔 롤스로이스-벤틀리가 뮬리너를 인수했고, 지금은 벤틀리의 주문제작 전담부서로 거듭났다.
2003년, 새로운 벤틀리 컨티넨탈의 시작
컨티넨탈 GT
1998년, 벤틀리는 폭스바겐그룹에 합류하며 새 시대를 예고했다.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2002년 프랑스 파리모터쇼에서 데뷔한 1세대 컨티넨탈 GT다. 영국 크루 공장에서 생산한 컨티넨탈 GT는 과거 R-타입 컨티넨탈을 연상시키는 길쭉한 후드와 날렵한 지붕, 두툼한 리어 펜더가 압권이었다. 최상급 가죽과 목재로 구성한 실내도 남다른 존재감을 뽐냈다.
벤틀리 타워에 전시한 1~3세대 컨티넨탈 GT
동력성능도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당시 폭스바겐그룹 내 플래그십 모델이 사용하는 D1 플랫폼을 가져와, W12 6.0L 가솔린 트윈터보 560마력 엔진과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을 얹어 최고속도 시속 318㎞를 달성했다. 뮬리너는 이듬해 다양한 맞춤 사양을 공개했다. 고객은 색다른 휠을 선택하거나 실내 투톤 가죽, 스포츠 풋 페달 등을 취향에 맞게 넣을 수 있었다.
플라잉 스퍼
2005년엔 최고급 4도어 세단인 플라잉 스퍼를 선보였다. 길이 5.3m의 거대한 체격을 지녔지만, 컨티넨탈 GT를 빼닮은 스타일로 럭셔리 퍼포먼스 세단이란 장르를 다시 정의했다. 최고속도는 시속 314㎞로 컨티넨탈 GT와 거의 차이가 없었으며, 2008년엔 엔진의 출력을 610마력으로 높이면서 시속 320㎞를 돌파했다. S-클래스보다 고급스러운 실내도 눈에 띄었다.
벤테이가
즉, 벤틀리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럭셔리카 시장에서 뛰어난 동력성능을 양립해 새 시장을 만들었다. 이는 모터스포츠로 시작한 벤틀리의 브랜드 철학과도 일치하는 변화였다. 또한, 2016년 벤틀리 최초의 SUV로 등장한 벤테이가 역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SUV’ 타이틀을 출시와 함께 챙겼다. 여담이지만, 영국 왕실에서 쓰는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도 607마력을 뿜는다.
460억 가지 조합 가능한 주문제작 프로그램, 뮬리너
벤틀리의 주문제작 부서 뮬리너는 전 세계 단 1대만 존재하는 ‘나만의 벤틀리’를 원하는 고객에게 특별한 비스포크 서비스를 제공한다. 내외장 컬러와 실내 소재, 휠 디자인, 심지어 시트 뒷판과 자수 크기까지 고객이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만 460억 가지에 달한다. 총 제작기간만 약 1년6개월 정도 걸리는데, 뮬리너는 이를 ‘고객과 함께하는 여정’이라고 부른다.
블로워
스피드 식스
과거 전설적인 벤틀리 모델을 복원시키는 ‘컨티뉴에이션 시리즈’도 진행 중이다. 최근엔 1929년형 벤틀리 블로워를 원형 그대로, 과거의 제작 방식을 따라 복원했다. 앞으로 총 12대를 만들어 고객에게 인도할 계획인데, 8,000㎞의 트랙 테스트와 3만5,000㎞ 도로시험을 거쳐 판매한다. 즉, 단순한 관상 용도가 아닌, 실제 주행이 가능한 모델로 의미를 갖는다.
스테이트 리무진
바칼라
바투르기존 라인업과는 다른 코치빌딩 모델도 있다. 앞서 소개한, 영국 왕실에 납품하는 스테이트 리무진도 뮬리너의 작품이다. 컨티넨탈 GTC를 밑바탕 삼아 단 12대만 한정 제작한 바칼라(Bacalar)와 지난해 등장한 바투르(Batur)도 대표적이다. 특히 바투르는 벤틀리가 2025년 선보일 전기차의 ‘디자인 예고편’으로 이해하면 좋다. 이 차 역시 18대 한정 생산이다. 소재 혁신도 치렀다. 가령, 실내엔 지속 가능한 천연 탄소섬유 재료와 저탄소 가죽을 사용했다. 3D 프린팅 기술로 뽑아낸 18K 골드도 눈에 띈다. 보닛 아래엔 컨티넨탈 GT와 같은 W12 6.0L 가솔린 터보 엔진이 들어가는데, 개선을 통해 최고출력을 740마력으로 높였다. 이외에 네임, 포칼과 공동 개발한 전용 오디오 시스템은 1만 시간 이상의 연구개발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