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친환경차’ 프리우스 PHEV의 서킷 데뷔 현장에 가다

2007년부터 시작해 우리나라 대표 모터스포츠 시리즈로 자리 잡은 슈퍼레이스. 지난달 20~21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2024 오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개막전이 열렸다. 슈퍼 6000과 GT/GT4 클래스 등 다채로운 레이스가 펼쳐진 가운데, 아주 생소한 경기가 관중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바로 전 세계 최초로 열린 ‘프리우스 PHEV 클래스’다.

글 서동현 기자(dhseo1208@gmail.com)

사진 슈퍼레이스, 서동현

시간을 되돌려 지난해 12월 13일, 5세대 프리우스 출시 행사장에서 깜짝 발표가 있었다. 2024 슈퍼레이스에 프리우스 PHEV 클래스를 신설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현지에도 없는 대회의 국내 상륙 소식에 한 번, ‘프리우스 레이스카’가 등장한다는 소식에 두 번 놀랐다. 전 세계를 대표하는 하이브리드차의 서킷 데뷔라니. 실제 경기 현장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우리나라 모터스포츠를 대표하는 ‘슈퍼레이스’

그렇게 4월 21일,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를 찾았다. 개인적으로는 10년 만의 슈퍼레이스 직관이다. 최상위 클래스 슈퍼 6000의 레이스카 카울은 제네시스 G80(DH)에서 토요타 수프라로 바뀌었으며, 참가 팀 및 소속 드라이버들의 조합도 완전히 달라졌다. 그동안 시즌에 따라 해외 서킷에서도 몇몇 라운드를 개최하기도 했다. ‘모터스포츠 불모지’로 평가받는 우리나라지만, 슈퍼레이스는 항상 새로운 시도로 관객들을 끌어모았다.

가령 2012년부터 ‘나이트 레이스’를 진행했다. 화려하게 꾸민 경주차들이 조명 아래에서 질주하는 이색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날씨가 선선해 관람 환경도 좋다. 2017년부터는 영암 경기에 맞춰 전라남도와 협업해 ‘아시아 모터스포츠 카니발’을 열고 있다. 아우디 R8 LMS 컵과 슈퍼 포뮬러 주니어,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아시아 등 해외 레이스를 이벤트성으로 개최하거나, 무더위를 식힐 서머 페스티벌 등을 함께 진행해 즐길거리가 한층 풍성하다. 비슷한 콘셉트로 인제 경기에서는 ‘강원 국제 모터페스타’를 개최한다.

이러한 이벤트는 올해에도 계속된다. 오는 5월 19일 영암 코리아 인터네셔널 서킷에서 아시아 모터스포츠 카니발이 열린다. 경기 도중 타이어 교체 및 주유를 해야 하는 시즌 유일의 ‘피트 스톱 레이스’기도 하다. 이후 6~8월 열리는 4·5·6라운드는 ‘Summer Season’으로 분류, 모두 나이트 레이스로 진행한다. 이에 따라 인제 스피디움에서 열리는 4라운드는 ‘강원 국제 나이트 레이스’로 이름을 바꿨다.

존재감 뚜렷했던 토요타 부스

4월 21일 오전 9시. 공식 일정 시작 1시간을 앞두고 현장에는 이미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CJ와 미쉐린 사일룬 등 공식 스폰서 부스와 푸드트럭이 먼저 관람객을 맞이했다. 특히 푸드트럭은 관람객 피드백을 반영, 음식과 음료가 부족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했다. 미니게임과 RC카 등 어린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한가득 마련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부스를 차린 곳은 토요타였다. 규모만으로도 슈퍼레이스 내에서의 입지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이었다. 우선 GR 86과 레이스카로 꾸민 프리우스 PHEV, 슈퍼 6000 스톡카 목업 모델을 전시했다. 레이싱 데칼과 스포일러로 무장한 프리우스는 특히 인기가 많았다. 100% 레이스 사양은 아니었지만, ‘친환경차’ 프리우스의 낯선 모습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 뒤로는 GR(Gazoo Racing) 브랜드 및 GR 86 전용 부스를 차렸다. 토요타는 알지만 ‘GR’이라는 고성능 부서를 몰랐던 관람객을 위한 부스다. 프리우스 PHEV 퀴즈와 드림 아트 카 이벤트는 어린이들을 위한 부스. 직접 문제를 풀고 그림을 그리며 토요타 브랜드 및 프리우스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프리우스들의 쉴 틈 없는 경쟁, 의외로 재밌는데?

시침이 10시를 가리킬 쯤, 레이스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첫 일정은 슈퍼 6000 클래스 2라운드 예선. 많은 프로 팀과 선수가 참가해 팬덤도 가장 큰 시리즈다. 경주차는 GR 수프라 카울 아래에 V8 6.2L 가솔린 엔진과 6단 시퀀셜 변속기를 얹은 스톡카. 최고출력은 460마력으로, 빠른 속도와 원초적인 배기 사운드 덕분에 보는 맛이 상당하다.

곧바로 프리우스 PHEV 클래스 결승전 시간이 다가왔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18대의 프리우스 PHEV가 차례대로 그리드에 나섰다. 그중 9명은 개인 참가자. 나머지 9명은 부산과학기술대학교 레이싱 팀(4명)과 레드콘 모터스포트(2명), 다이나믹 레이싱팀(2명), 어퍼스피드(1명) 소속으로 출전했다. 참고로 프리우스 PHEV 클래스는 대한자동차경주협회(KARA) C등급 라이센스가 필요한 아마추어 레이스다.

예선전은 하루 전인 토요일에 진행됐다. 예상치 못했던 관전 포인트는 바로 ‘날씨’였다. 예선전은 가장 빠른 랩타임을 기록한 순서대로 결승전 출발 순서를 정하는 방식. 따라서 선수들끼리 뭉쳐서 달리는 그림은 없었지만, 빗물 탓에 경주차가 미끄러지며 드리프트를 하는 듯한 흥미로운 장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 마찰력 낮은 노면과 자세제어 시스템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예선 시간은 총 30분. 경기 막판까지 천용민 선수(개인 참가자)와 송형진 선수(어퍼스피드), 표중권 선수(부산과학기술대학교 레이싱팀)가 0.4초 차이로 1위 경쟁을 이어갔다. 그런데 경기 종료 2분35초 전, 강창원 선수(부산과학기술대학교 레이싱팀)가 2분34초025의 랩타임을 기록하며 단숨에 1위로 올라섰다. 그대로 레이스가 끝나며 강창원 선수가 첫 번째 프리우스 PHEV 클래스의 폴 포지션을 차지했다.

결승전 당일에도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다. 다행히 트랙은 바짝 말랐다. 결승은 롤링 스타트 방식으로 시작한다. 모든 선수들이 세이프티카를 따라 서킷을 한 바퀴 돌고, 세이프티카가 빠진 뒤 신호등이 꺼진 순간 가속하며 첫 번째 코너로 달려든다. 이후 12바퀴를 돌며 순위 경쟁을 시작한다.

나는 메인 관람석과 레이스카를 가깝게 볼 수 있는 코너 근처를 오가며 경기를 관람했다. 첫인상은 ‘조용하다’였다. 분명 급가속을 하면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엔진과 전기 모터가 함께 힘을 낸다. 그런데 프리우스 PHEV 18대가 한꺼번에 달려드는데도 엔진음은 좀처럼 듣기 어려웠다. 오히려 폭을 늘린 경주용 타이어가 만드는 노면 소음이 더 크게 들렸다.

역대급으로 고요했던 레이스. 하지만 경기 과정까지 단조롭지는 않았다. 레이스 초반에는 10~13위의 네 선수가 뭉쳐다니며 코너마다 접전을 펼쳤다. 선두는 레코드라인을 그리며 도망가기에 바빴고, 뒤따르는 선수는 과감한 코너 진입과 빠른 탈출속도를 이용한 추월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레이스카의 성능은 완전히 똑같아, 선수 개인의 기량만으로 순위를 올려야 한다.

8랩에서도 중상위권에서 최소 세 명의 선수가 경쟁했다. 송형진 선수와 전현준 선수(개인 참가자), 이율 선수(레드콘 모터스포트)가 8~9번 코너에서 범퍼가 맞닿을 듯 가깝게 달리며 눈치싸움을 이어갔다. 최종 승자는 이율 선수. 나머지 두 선수의 코스 이탈을 틈타 단번에 4위로 올라섰다. 이어 9랩이 채 끝나기 전에 3위를 추월하며 포디움 입성에 성공했다.

경주차끼리의 출력 차이도 돋보였다. 경기 후반부로 갈수록 비슷한 페이스로 코너를 탈출했으나, 직선 구간에서 단순 가속만으로 추월에 성공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아마도 하이브리드 배터리를 모두 소진한 선수와 배터리를 관리하며 달린 선수의 차이일 듯하다. 참고로 프리우스 PHEV의 배터리는 한 바퀴당 약 15%씩 줄어든다고 하며, 이를 다 쓰면 합산 최고출력 223마력을 온전히 쓸 수 없다. 이외에도 완전히 끌 수 없는 프리우스의 자세제어 시스템 탓에 코너 탈출 과정에서 애를 먹는 선수들도 많았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체커기가 휘날렸다. 1위는 폴 포지션으로 출발한 강창원 선수. 결승 1등 점수(25포인트)와 예선 1등 점수(3점), 패스티스트 랩 점수(1점)까지 휩쓸어, 한 라운드에서 한 선수가 가장 많이 획득할 수 있는 포인트인 29점을 얻었다. 랩타임 최고기록은 2분24초392. 배터리가 충분한 상태로 본인의 예선전 기록보다 약 10초를 당겼다. 이어서 자신의 순위를 끝까지 지켜낸 천용민 선수가 2위, 10위로 출발해 꾸준한 추월을 거듭한 이율 선수가 3위로 골인했다.

프리우스 경주차, 뭐가 다를까?

이어서 진행된 그리드 워크(Grid Walk). 레이스에 출전하는 모든 차들이 서킷에 나와 관람객을 맞이하는 시간이다. 이 틈에 프리우스 PHEV 레이스카의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화려한 데칼을 제외하고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차의 테두리. 앞뒤 범퍼와 사이드 스커트에 바디킷을 달아 한층 낮게 깔린 자세를 연출했다. 트렁크 끝에도 한층 날렵한 리어 스포일러를 달았다. 그중 GR 프론트 스포일러와 GR 테일게이트 스포일러는 일반 소비자도 구매할 수 있다.

외관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타이어다. 프리우스 PHEV의 순정 타이어는 195/50 R19 규격의 미쉐린 프라이머시 올시즌(XSE 트림 기준). 반면 경주용 타이어는 225/45 R18 사이즈의 브리지스톤 포텐자 RE-71RS다. 보다 끈적한 고무와 30㎜ 늘어난 타이어 폭으로 프리우스의 운동 성능을 보강했다. 휠과 조절식 쇼크 업소버는 각각 아사(ASA)와 HSD의 제품. 브레이크 패드와 호스 역시 규정에 맞게 교체해야 한다.

실내에는 버킷시트와 6점식 안전벨트, 레이싱 네트, 4점식 롤케이지 등을 달아야 한다. 롤케이지는 2열 공간을 가득 채우는데, 때문에 뒷좌석은 사실상 사람이 탑승하기 어렵다. 그 외에는 모두 순정 상태다. 경량화를 위해 도어트림이나 센터콘솔을 뜯어내지도 않는다. 마치 평일에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생활하다가, 주말엔 유니폼 입고 경기에 출전하는 운동선수같다.

아주 이색적인 레이스였다. 일본차가 국내 서킷을 달리는 건 별일 아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의 원조’였기 때문에 특별했다. 이번 프리우스 PHEV 클래스는 국내 서킷 문화에 대한 한국토요타자동차의 꾸준한 관심과 투자가 만든 성과다. 2020년부터 슈퍼 6000 클래스와 수프라 카울 계약을 체결하고, ‘GR 레이싱 클래스’를 열어 토요타·렉서스 고객들을 트랙으로 이끌었다. 올해부터는 ‘팀 GR 서포터즈’를 운영해 토요타 GR 브랜드는 물론, 우리나라 모터스포츠의 매력을 알릴 계획이라고 한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국토요타자동차 강대환 부사장에게 왜 프리우스 원메이크 레이스를 개최했는지 물었다. “‘PHEV 레이싱’을 떠올리긴 쉽지 않죠. 그런데 전기와 수소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이 공존하는 지금, PHEV를 활용한 경기도 충분히 재미있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동시에 한국 모터스포츠 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토요타가 이미 대형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는 슈퍼레이스를 통해 프리우스와 GR 브랜드를 홍보하면서도, 신규 카테고리로 새로운 선수와 팬들을 유입시키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토요타는 이번 프리우스 PHEV 클래스에 출전하는 선수 선착순 15명에게 튜닝 비용과 대회 참가비, 레이싱 슈트 등을 제공했다. 지원 비용만 총 2,000만 원 상당. 단 올해부터 2026년까지 3년 동안 참가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예상보다 흥미진진했던 프리우스 PHEV 클래스. 비록 귀는 심심했지만,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 덕분에 눈을 떼기 힘든 경기였다. 관람객에게는 독특한 볼거리를, 드라이버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프리우스에게는 신선한 이미지를 선물해 의미도 남달랐다. 효율의 대명사 프리우스가 떼지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슈퍼레이스 일정을 참고해 꼭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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