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코리아가 3일, ‘르노 누벨 바그’ 기자 간담회에서 세닉 E-테크(Scenic E-테크, 이하 세닉)을 국내 최초로 공개했다. 지난해 데뷔한 순수 전기차로, C-세그먼트 시장에서 폭스바겐 ID.4 등과 경쟁한다. 내년 우리나라에 상륙하는 세닉을 르노 성수 전시장에서 미리 만났다.
글|사진 서동현 기자(dhseo1208@gmail.com)
세닉의 시초는 2022년 등장한 세닉 비전 콘셉트. 세닉은 원래 르노의 내연기관 MPV 중 하나였는데, 이를 단종하고 순수 전기 콘셉트카로 재탄생시켰다. 완전히 새로운 비율과 디테일, 재활용 및 친환경 소재, 뛰어난 안전 시스템 등을 적용해 르노 전기차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양산차는 지난해 9월 데뷔, 우수한 상품성으로 최근 스위스 제네바 국제 모터쇼에서 ‘2024 올해의 차’로 선정됐다.
세닉의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470×1,864×1,571㎜. 휠베이스는 2,785㎜다. 휠베이스는 ID.4보다 20㎜ 넉넉하고, 차체 길이는 115㎜ 짧다. 높이도 49㎜ 낮아 ID.4보다 자세가 안정적이다. 공차중량은 1,850㎏(87㎾h 배터리 사양 기준).
얼굴은 이전까지 국내에서 만나왔던 르노코리아의 차종들과 전혀 딴 판이다. ‘C’자형 주간 주행등을 버리고 새 패밀리룩을 도입한 덕분이다. 곡선보다 직선을 강조한 헤드램프와 주간 주행등을 적용하고, 범퍼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라디에이터 그릴 패턴을 새겼다. 부드럽고 우아한 이미지보다 강인하고 남성적인 분위기가 더 돋보인다.
옆모습과 뒷모습에선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20인치 휠 표면을 반듯하게 처리하고, 도어 손잡이는 필요할 때만 나오도록 설계했다. 리어 범퍼 양쪽 끝에는 삐죽 튀어나온 꼬리를 만들었다. 차체 옆면을 타고 흐른 공기가 뒤쪽에서 저항을 만들지 못하도록 막는 장치다. 리어램프는 투명한 타입. 방향지시등은 안쪽에서부터 바깥으로 흐르는 시퀀셜 타입이다(리어램프만 해당).
실내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요소는 디스플레이다. 가운데에 송풍구를 두고 12.3인치 계기판과 12인치 중앙 디스플레이를 연결했다. 시원시원한 크기와 빠른 터치 반응속도 덕분에 XM3나 QM6 등 기존 모델보다 기능 조작이 쾌적하다. 계기판은 주행 속도를 크게 표시하거나, 중앙 디스플레이의 지도를 띄울 수도 있다.
스티어링 휠도 바꿨다. 고급스러운 피아노 블랙 패널로 3시 및 9시 방향 버튼을 만들었다. 오른쪽 아래에는 주행 모드를 바꿀 수 있는 버튼도 따로 마련했다. 주로 고성능 차에서나 볼 수 있는 포인트인데, 르노 전기차에서 만나니 새롭다. 기어 레버는 메르세데스-벤츠와 비슷한 칼럼식. 오디오 볼륨 다이얼은 기존 방식 그대로다.
인테리어의 눈에 띄는 장점은 수납공간이다. 센터콘솔부터 상당히 여유롭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는 그 위로 띄워 공간을 명확하게 분리했다. 암레스트 커버를 열어도 꽤 깊은 공간이 나오며, USB-C 타입 포트 2개도 넣었다. 양쪽 도어 포켓 역시 생각보다 넉넉하다.
2열 암레스트도 독특하다. 커버를 열고 컵홀더를 돌리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고정할 수 있는 홈이 나온다. 이동 중 편안하게 영상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한 아이디어다. 다만 조금이라도 두꺼운 휴대폰 케이스를 끼웠다면 고정이 힘들 수 있다.
지붕의 ‘솔라베이(Solarbay) 루프’는 세닉의 차급에서 기대하기 어려웠던 고급 사양. 유리의 투명도를 조절해 햇빛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투명도를 부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 르노에 따르면 평범한 기계식 블라인드보다 헤드룸을 30㎜ 더 확보했고, 무게는 6~8㎏ 가볍다고 한다. 해당 유리의 50%는 판금이나 자동차 유리 폐기물로 만들어 환경에도 이롭다.
참고로 실내의 거의 모든 재료는 환경을 생각하는 소재다. 대시보드의 80%, 스티어링 휠 커버의 51%를 재활용·친환경 소재로 만들었다. 도어 패널 수납함 45%와 바닥 매트 54%도 마찬가지. 차체 외부 패널마저 재활용 알루미늄으로 빚었다.
세닉의 파워트레인은 두 가지. 기본형은 60㎾h 용량 배터리를 얹고 최고출력 170마력, 최대토크 28.5㎏·m를 내는 전기 모터를 쓴다.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9.3초. 최고속도는 시속 150㎞로 묶었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WLTP 기준 430㎞다.
국내 출시가 유력한 모델은 87㎾h 버전이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각각 218마력 및 30.6㎏·m.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8.4초다. 최고속도는 시속 170㎞며, WLTP 기준 총 주행거리는 625㎞. 전시차 계기판에 뜬 배터리 잔량과 주행가능거리를 바탕으로 간단하게 계산해보면 약 530㎞ 이상은 거뜬히 달릴 듯하다.
직접 본 세닉은 디자인과 공간, 편의성 등 여러 면에서 매력적인 전기차였다. 관건은 가격이다. 세닉은 현지에서 테크노(techno)와 에스프리 알핀(esprit Alpine), 아이코닉(iconic) 세 가지 트림으로 나온다. 테크노의 가격은 3만7,495파운드, 약 6,367만 원이다. 최상위 트림은 4만5,495파운드(약 7,725만 원). 현대 아이오닉 5보다 작지만 가격은 만만치 않다. 과연 경쟁이 뜨거운 전기차 시장에서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