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과 효율의 완벽한 조화, 하이브리드 그 이상의 전동화 경험’. 지난 4월 10일, 현대자동차그룹이 서울 중구의 ‘크레스트 72’에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선보이며 앞세운 슬로건이다. 기존엔 엔진과 벨트 구동 시동 모터, 변속기 안에 원반형 전기 모터로 구성한 병렬식. 이번 역시 병렬식인데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전기 모터 두 개와 클러치를 넣었다.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김기범 | 참고자료 HMG 저널

독자기술 개발 고집한 40년 여정
현대자동차그룹의 하이브리드 개발 역사는 40년을 헤아린다. 1995년 제1회 서울모터쇼에서 프로 엑센트를 기반으로 만들어 선보인 콘셉트카 ‘FGV-1(Future Green Vehicle-1)’이 예고편이었다.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치를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에서 ‘교토의정서’ 채택과 더불어 자동차 배출가스의 강도 높은 규제가 예고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자동차 업계에 친환경차에 대한 관심이 치솟던 시기였다. 토요타가 발 빠르게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1997년 10월, 프리우스를 출시했다. 세계 최초의 양산 하이브리드 자동차였다. 또한, 두 달 뒤 교토에서 막을 올린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에 의전차로 제공했다. 이 데드라인에 맞춰 전례 없던 차종을 개발하느라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런데 프리우스의 탄생은 업계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토요타가 2만 건 이상의 특허로 빈틈없는 장벽을 쳤기 때문. 현대차그룹은 2000년 베르나와 카운티 하이브리드를 개발했다. 2004년엔 클릭 하이브리드를 50대 생산해 정부기관에 공급했다. 같은 해 현대차 그룹은 남양연구소에 ‘하이브리드 개발실’을 마련해 양산을 꿈꿨다.

2009년 세계 최초로 LPi 엔진 기반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해 아반떼와 포르테에 얹었다. 처음으로 핵심 부품을 직접 설계하고, 국내 생산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었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사용한 하이브리드 양산차이기도 했다. 가능성을 확인한 현대차 그룹은 전기 모터만으로 주행 가능한 병렬형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때마침 토요타가 기술과 부품제공을 제안했다. 해외 부품업체와 협력도 타진했다. 그러나 결국 독자노선을 걷기로 했다. 2011년 5월, 현대차그룹은 병렬형 하드타입 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를 출시했다. 이후 적용 차종을 늘려 왔다. 후발주자 특유의 절실함과 집요함이 낳은 결실이었다. 현대차그룹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핵심은 각 요소 간의 균형과 조화다.
두 개의 전기 모터 품은 변속기

지난 4월 10일, 현대차그룹이 서울 중구의 ‘크레스트 72’에서 차세대 하이브리드 테크 데이를 열었다. 이날 앞세운 두 가지 핵심은 ①동력과 효율의 완벽한 조화와 ②하이브리드 이상의 전동화 경험. 현대차 그룹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2009년 양산, 2011년 대중화, 2016년 전동화 전용 모델, 2020년 터보 하이브리드의 순서로 단점을 지우며 진화해 왔다.
이번에 현대차그룹이 소개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전기 모터 구성부터 다르다. 기존엔 시동과 발전 맡은 P0 모터와 엔진을 벨트로 연결하고,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클러치와 P2 모터를 배치했다. 그런데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벨트로 구동하는 과정에서 마찰 손실이 생겼다. P2 모터 단독으로 구동을 맡아 연비와 동력 성능 높이는데 어려움도 있었다.

새 시스템의 핵심은 기존 6단 DCT를 대체할 차세대 하이브리드 6단 자동변속기. 엔진 옆에 있던 벨트 구동 시동 모터(P0)를 없애고, 시동 및 발전, 구동력 보조 역할의 전기 모터(P1)를 댐퍼와 일체화해 엔진과 직접 체결했다. 그 위에 필요에 따라 엔진과 동력 잇고 끊는 클러치를 달고, 구동 및 회생제동을 맡은 구동 모터(P2)와 변속기를 차례로 붙였다.
그 결과 변속기 내부가 농밀해졌다. 하지만 패키징 최적화로 부피와 무게 증가는 최소화했다. 가령 길이는 8.5㎜ 느는데 그쳤다. 변속기 허용 토크는 기존 37.4㎏·m에서 46.9㎏·m로 약 25% 높였다. P1·P2 모터의 냉각 구조 및 냉각 유량을 개선해 단위부피 당 출력 밀도를 20.8%, 토크 밀도를 6.8% 높였다. 덕분에 고배기량 터보 엔진과도 궁합이 좋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엔진과 변속기 사이의 P1과 P2 모터 양쪽에 연결했다. 급가속이나 오르막 주행 땐 엔진과 P1, P2 모터가 동시에 추진력을 뽑아낸다. 엔진으로 P1 모터를 돌려 배터리를 충전하고, 그 전력을 이용해 P2 모터만으로 달릴 수도 있다. 클러치를 연결해 전기 모터는 끈 채 엔진만으로 주행도 가능하다. 한편, 회생제동은 늘 P2 모터의 몫이다.
[표] 모터 개입 위치에 따른 하이브리드 시스템 분류(출처: 현대자동차그룹)
P0 | 시동·발전 | 엔진-구동벨트 연결 |
P1 | 시동·발전·구동보조 | 엔진-직체결 |
P2 | 구동·회생제동 | 변속기 입력축 연결 |
P3 | 구동·회생제동 | 변속기 출력축 연결 |
P4 | 구동 | (후륜)구동축 연결 |
첫 짝꿍은 2.5 터보 하이브리드 엔진

현대차그룹은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첫 파워트레인으로 가솔린 2.5 터보 하이브리드 엔진을 선보였다. 신형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의 심장으로, 기존 2.5 터보 엔진을 꼼꼼히 개선해 효율을 극대화했다. 그 결과 팰리세이드 2WD(7/9인승, 18인치 휠) 기준, 연비는 약 45%, 최고출력(334마력)과 최대토크(46.9㎏·m)는 각각 약 19%, 9% 높다.
이 엔진의 특징은 ‘과팽창 사이클’. ‘앳킨슨 사이클’ 또는 ‘밀러 사이클’이라고도 부른다. 보통 내연기관은 ‘흡입→압축→폭발→배기’의 4행정으로 동력을 얻는다. 이 엔진은 압축 행정 때 흡기 밸브를 늦게 닫는다. 들이마신 혼합기 일부를 다시 내뱉는 셈이다. 그러면 실린더의 혼합기 양이 줄어 압축비를 낮출 수 있다. 펌핑 로스(압축 저항)도 줄일 수 있다.

반면, 폭발 과정에선 높은 팽창비를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팽창비를 끌어 올리면 엔진의 열효율을 높일 수 있다. 연비 개선으로 이어진다. 대신 그만큼 토크가 떨어진다. 그 공백을 전기 모터의 힘으로 채우는 게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핵심인 ‘시너지’다. 이 밖에도 현대차그룹은 피스톤 형상을 개선하고 연료의 3단 분사 영역을 대폭 확장해 효율을 높였다.
엔진에 P1 모터를 직접 체결하면서 메인 벨트와 알터네이터, 에어컨 컴프레서 등을 없앴다. 시동 시간과 연료 소모량도 줄였다. 또한, 엔진 부하와 P1·P2 모터의 구동력 정밀 조절로, 고효율 영역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변속 로직도 P1 모터 덕분에 더 빠르고 부드럽다. 아울러 엔진 클러치 제어로, 전기 모드 주행 중 엔진 개입 시 이질감을 줄였다.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의 배터리는 1.65㎾ 300V 리튬이온. 싼타페 1.6 터보 하이브리드보다 용량과 전압 모두 높다. 현대차그룹은 새 하이브리드 변속기를 여러 엔진과 엮어 출력 100~300마력대, 소형~대형 하이브리드 차종을 선보일 계획이다. 내년 후륜구동용 2.5 터보 하이브리드 제네시스도 출시한다. 궁극엔 엔진 차종의 하이브리드 기본화가 목표다.
기존 하이브리드 넘어선 전기차 경험

아울러 현대차그룹은 ‘하이브리드 이상의 전동화 경험’도 약속했다. 가령 e-AWD는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으로, 전륜 기반 하이브리드 차량의 후륜에 구동 모터(P4)를 더해 주행 성능과 가속 응답성을 높인다. e-VMC 2.0은 e-AWD 기반 하이브리드 차량에 적용하는 기술로, 앞뒤 구동 모터의 독립 토크 제어를 통해 주행 안정성과 승차감을 높여준다.

e-핸들링 2.0은 선회 시 전·후륜 모터를 각각 반대 방향으로 제어해 차량 무게중심을 낮춰 롤 방지 성능을 강화한다. e-EHA 2.0은 긴급 조향 보조 기술. 차량의 레이더 및 카메라 센서를 활용해 전방 충돌 위험을 감지하고, 운전자의 급격한 조향 시 전·후륜 모터의 제동 제어, 안정 구간에 들어서면 앞 구동, 뒤 제동으로 차량 무게중심을 낮춰 롤을 줄인다.

e-라이드 2.0은 과속방지턱 통과 시 차량의 상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기술. 전·후륜 모터의 반대 방향 제어를 통한 차량의 무게 중심 변화를 활용해 피치 및 바운스 모션을 최소화한다. 스테이 모드는 엔진 시동 없이 편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 배터리 잔량 70~80%에서 1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다. 사용 예약을 통해 도착 전 미리 충전도 가능하다.

또한, 일부 전기차의 특권이었던 V2L(외부 전원)도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영역으로 확대했다. 용량도 순수 전기차처럼 최대 3.6㎾를 지원한다. 엔진 시동 시엔 연속적으로, 스테이 모드에서는 배터리 용량의 절반(SoC 80~30%)까지 쓸 수 있다. 스마트 회생 제동은 내비게이션 정보와 차간 거리 등을 종합해 최적의 회생 제동 강도를 자동 적용한다.

현대차그룹은 나만의 길을 향한 40년 노력 끝에, 후발주자의 설움을 딛고 하이브리드 차량의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다. 원조 격인 토요타 직병렬식의 차선책이 아닌, 대안으로서 경쟁력을 한껏 높였다. 다만, 오늘을 외면한 내일은 없다. 브랜드를 믿고 기존 하이브리드 차종을 구매한 고객 불만에 적극 대응할 때, 차세대 기술의 명분과 가치도 더욱 빛날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