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토요타 프리우스가 5세대로 거듭났다. 개발팀은 회사 총수가 제안한 택시의 운명에 반기를 들었다. 고객의 이성만큼, 감성에도 호소할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꿈꿨다. 극단적 쐐기 형태를 추구하기 위해 A필러의 소재를 바꾸고, 시트 포지션도 다시 설정했다. 그 결과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섹시하면서도 효율적인 프리우스가 태어났다.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토요타 글로벌 뉴스룸, 토요타 타임즈 글로벌
스포티한 외모와 날렵한 실루엣 뽐내


“택시요?” 5세대 프리우스의 개발방향을 의논하는 자리였다. 토요타 그룹의 아키오(豊田章男) 회장은 택시 전용으로 변신을 제안했다. 심지어 한 술 더 떴다. “다른 제조사가 원하면 만들 수 있도록 라이선스도 제공하고요.” 토요타 디자인 총괄, 사이먼 험프리스(Simon Humphries)는 펄쩍 뛰었다. 그가 계획한 차세대 프리우스의 방향성과 전혀 달라서다.
그는 멋진 프리우스를 꿈꿨다. 이를테면 기능에 초점 맞추느라 외모를 포기했던 프리우스를, 열정과 사랑의 대상으로 바꿀 요량이었다. 그는 토요타 생산방식의 핵심 중 하나인 ‘시각화’를 활용했다. 그와 팀이 그린 신형 프리우스 디자인을 회장에게 보여줬다. 비로소 아키오 입에서 “멋지다”는 말이 나왔다. 5세대 프리우스의 운명이 극적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지난 2024년 1월, 토요타 프리우스가 ‘2024년 세계 올해의 자동차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서로 다른 매력 뽐내는 70여 대의 경쟁 차종을 제치고 거둔 성과였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변화는 극적이었다. 이번 프리우스 역시 공기역학 때문에 숙명적으로 쐐기 모양을 계승했다. 다만, 극단을 추구했다. 그 결과 스포티한 외모와 날렵한 실루엣으로 거듭났다.
공짜는 없었다. 대가를 치러야 했다. “공기역학적 특성은 오히려 4세대가 유리했어요. 루프의 정점이 더 앞쪽에 있었기 때문이죠. 대신 차체 높이를 이전보다 50㎜ 낮췄어요. 정면 저항에 영향 미치는 표면적을 줄이려고요. 덕분에 4세대와 동일한 수준의 공기저항계수를 확보할 수 있었죠.” 5세대 프리우스의 치프 엔지니어 오야 사토키(大矢賢樹)의 설명이다.
렉서스 LFA보다도 낮은 앞 유리 각도

지난 2022년 12월, 친환경차 매체 <그린 카>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치른 5세대 프리우스 시승 때 오야 사토키와 나눈 이야기를 보도했다. 그는 “토요타 엔지니어들은 이처럼 혁신적인 디자인의 양산차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고 밝히고, “멋을 추구하되 성능을 높이고, 전체 무게를 줄이며, 더욱 엄격해진 향후 충돌 시험 요건까지 준수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이번 프리우스의 첫 인상을 좌우한 요소는 거의 눕다시피 한 윈드실드(앞 유리)다. 자연스레 슈퍼카를 떠올릴 만큼 비스듬히 누웠다. 오야 사토키에 따르면, 5세대 프리우스의 윈드실드 각도는 21.6°. 4세대 프리우스의 26.3°보다 훨씬 더 눕혔다. 심지어 렉서스 LFA의 21.5°보다 0.5° 더 낮다. 덩달아 지붕의 최고점 또한 뒤쪽으로 이동했다.


오야는 이 같은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가파른 A필러 내부 구조에 대한 대규모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다. 그 결과 기존보다 1.3배 더 높은 강도를 지닌 새로운 고강도 강철로 A필러의 골격을 짰다. 덕분에 핫 스탬핑을 쓰지 않아 제조과정의 에너지 절약에도 기여했다. 또한, 유리 공급업체와 협력해 이전 세대보다 훨씬 긴 윈드실드 패널을 개발했다.
한편, 개발팀은 이전 세대보다 지붕 선 높이를 2인치 더 낮추기 위해 좌석 위치부터 다시 설정했다. 가령 뒷좌석 밑 배터리 팩과 연료탱크의 높이를 줄여 머리 공간을 확보했다. 덕분에 트렁크 공간도 VDA 기준 284L로 이전보다 33L 넉넉하다. 아울러 차체 길이는 46㎜ 줄이되 휠베이스는 50㎜ 늘렸다. 여기에 19인치 휠을 끼워 탄탄한 스탠스를 완성했다.
디자이너의 의도 대부분 양산에 반영


‘병치(juxtaposition)’. 신형 프리우스의 디자인 언어가 밑바탕 삼은 개념이다. 두 가지 이상의 대상을 어떤 기준에 따라 배열하는 방식을 말한다. 기아의 디자인 철학 ‘오퍼짓 유나이티드(Opposite United)’가 상반된 요소를 융합시키는 개념이라면, 병치는 대등한 비중으로 공존한다. 광택 머금은 표면의 볼륨감과 대비를 이루는 극단적 측면이 좋은 예다.
자동차 디자인 매체 <오토 앤 디자인>은 “불필요한 모양과 선을 절제해 자연스러운 공기 흐름에서 영감 받은 단순하고 깔끔한 디자인을 위한 공간을 남겼다”고 분석했다. 디자인 매체 <월페이퍼>는 “유선형 외모와 첨단 인테리어를 경쟁적으로 추구했던 1980~1990년대의 ‘개념적 고급 디자인(Conceptual high design)’에서 영감 받은 듯하다”고 평가했다.





5세대 프리우스 디자인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초기 스케치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훨씬 더 극단적인 쐐기 형태였다. 따라서 거주성과 충돌 안전성 등 현실적 문제를 놓고, 엔지니어와 치열한 조율이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차체 너비를 줄이고 실루엣을 좀 더 현실적으로 다듬었지만, 디자이너의 의도를 대부분 양산 모델로 반영한 점 또한 인상적이다.
실내도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예컨대 계기판을 운전자 앞으로 옮겼다. 1997년 데뷔 이후 역대 프리우스 가운데 최초다. TFT LCD는 7인치로 아담하다. 그러나 꼭 필요한 정보를 빠짐없이 띄운다. 무엇보다 운전 중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더 이상 곁눈질할 필요가 없어졌다. 운전자 중심의 실내 재편은 ‘재미’를 위한 성능 강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는 재미’와 ‘운전하는 재미’의 양립


이번 프리우스 디자인에 대한 개발팀의 생각을 엿볼 기회도 있다. 토요타 타임즈 글로벌이 공개한 디자인 개발팀 인터뷰를 통해서다. 이 프로젝트의 수석 디자이너 유지 후지와라(藤原裕司)는 “신형 프리우스의 모토는 ‘하이브리드, 다시 태어나다’였다. 우린 ‘숨 막힐 듯한 디자인’을 목표로 삼았다. 정량화가 어려운 만큼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고 설명했다.
겉모습을 빚은 주역들의 의견도 흥미롭다. 마나부 히로카와(廣川学)는 “차체 측면 표면의 리드미컬한 전환이 매력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이이다 히데아키(飯田秀明)는 “역대 최고로 스포티한 프리우스를 통해 고객의 삶이 더 흥미진진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마리오 마즈단지치(Mario Majdandzic)는 “토요타의 혁신정신이 최고의 동기부여였다”고 회상했다.


외관 모델링을 맡은 료 가마타(鎌田亮)는 “디자이너와 함께 다양한 모양을 실험한 결과 캐릭터 라인 없이 깨끗한 표면만으로, 아름다운 움직임이 있는 역동적인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디지털 모델링을 담당한 나오유키 누마쿠라(沼倉直行)는 “디자이너들과 수많은 논의 끝에 ‘보는 재미’와 ‘운전하는 재미’를 표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객관적인 평가는 역시 외부에서 나온다. 특히 현직 디자이너의 관점과 디테일은 남다르다. 핀셋처럼 핵심을 짚은 영국 RCA(왕립예술학교) 출신 디자이너 에이드리언 클라크(Adrian Clarke)가 대표적이다. “휠 아치와 타이어의 일정한 간격 좀 보세요. 심지어 타이어 중심축 아래까지 내려와 거의 감싸고 있잖아요. 이건 완벽한 디자인의 승리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