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프리우스로 수도권 출근길 연비를 확인했다. 시승차는 5세대 프리우스 하이브리드 XLE. 공인연비는 복합과 도심, 고속 각각 20.9, 21.5, 20.3㎞/L. 이전보다 출력을 1.6배 높이고, 가속 초기 반응을 높여 움직임이 한층 사뿐사뿐하다. 브레이크 시스템도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해 제동감각이 역대 최고로 자연스럽다. 게다가 외모마저 멋지다.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서동현 기자(dhseo1208@gmail.com)
전기차 수요 흡수하는 HEV
‘수요둔화’ 혹은 ‘착시현상’. 최근 국내외에서의 전기차 판매를 놓고 상반된 해석이 분분하다. 2023년 전 세계 판매대수를 보면 배터리 전기차(BEV)는 1,000만 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PHEV)와 주행거리 연장 전기차(EREV)는 420만 대다. 판매통계 낼 때 전기차로 묶는 이들 세 유형의 총합이 1,420만 대로, 2022년보다 약 33% 성장했다.
같은 기간 전체 자동차 판매 성장률(12%)의 세 배에 가깝다. 다만, 전년 대비 전기차 판매 성장률이 2020년 48%, 2021년 113%, 2022년 60%에 달했다 보니 상대적으로 부진해 보이기도 한다. 지난해 중국과 독일 등 주요 전기차 판매국의 보조금 폐지나 삭감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전기차에서 빠진 수요는 하이브리드 자동차(HEV) 시장을 살찌웠다.
특히 국내에서 올해 들어 이런 흐름엔 가속이 붙고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전기차 판매 등록대수는 2만5,550대. 지난해 1~3월보다 25.3% 줄었다. 반면 올 1분기 하이브리드 자동차 판매는 9만9,832대로 46.3% 늘었다. 양산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원조이면서도 “전동화에 늦었다”는 평을 듣던 토요타에게도 기회가 왔다.
경쟁사들도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서고 있다. 기아가 대표적이다. 현재 하이브리드 6차종을 판매 중인데, 2028년까지 9차종으로 다양화할 계획이다. 포드도 전기차 출시 계획을 늦추고, 2030년까지 모든 전기차종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더할 예정이다. 엔진과 전동화를 병행하는 제조사의 셈법은 복잡하다. 반면 소비자가 고르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연비다.
수도권 한 시간 출근길 연비 가늠
1997년 세계 최초의 양산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데뷔한 프리우스 또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준비했다. 수도권 출근과 계기판의 트립미터 수치를 조합한 가장 일상적이고 쉬운 방식으로 실제 연비를 가늠해 봤다. 코스는 경기도 광주부터 서울 서초동까지 편도 약 30㎞. 서초동 중심 반경 30㎞의 원은 수도권의 주요 베드타운들을 오롯이 품는다.
포털과 연동한 내비게이션이 띄운 예상 소요시간은 1시간 남짓. 코스 구성은 국도와 고속도로, 도심을 아우른다. 불특정다수가 이용했을 시승차의 누적 평균연비는 19.6㎞/L. 출근 연비만을 가늠하기 위해 기존 데이터는 지웠다. 출발 시간은 오전 9시 40분. 일반적 출근 시간인 9시 도착에 맞춰 나서자니 촬영에 충분한 밝기를 확보하기 어려워 다소 늦췄다.
시승차는 토요타의 5세대 프리우스 하이브리드. 이번 신형은 세대교체를 넘어 ‘프리우스를 다시 정의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 획기적인 변화를 잔뜩 담았다. 최근 본지에서 다양한 앵글의 기사를 통해 소개 중인 만큼 이번엔 파워트레인에 집중할 참이다. 핵심은 ‘파워 보강’. 이를 위해 직렬 4기통 엔진의 배기량을 기존 1.8에서 2.0L(1,987㏄)로 키웠다.
그 결과 신형 프리우스의 시스템 총 출력은 196마력으로, 이전 4세대의 1.6배에 달한다. 토요타로선 이례적으로, 0→시속 100㎞ 가속 시간 7.5초의 성능제원도 공개했다. 정부공인표준연비는 복합과 도심, 고속 각각 20.9, 21.5, 20.3㎞/L다. 참고로, 지난 2003년 이후 국내에서 자동차 공인연비는 제조사와 수입원이 신고하고 공인기관의 검증을 거친다.
배기량과 출력 높인 신형 프리우스
프리우스의 주행모드는 ‘노멀(Nomal)’과 ‘에코(Eco)’, ‘EV’ 등 총 세 가지다. 연비 확인을 위한 시승인 만큼 ‘에코’로 세팅했다. 그러면 프리우스는 운전자의 가속 페달 입력 및 냉난방 장치 조작에 따른 반응을 둔화시킨다. 주차장을 빠져 나와 주행하는 동안 계기판엔 EV 모드 아이콘이 떴다. 엔진을 깨우지 않은 채 전기 모터만으로 달린다는 뜻이다.
버튼을 눌러서 EV 모드를 강제할 수도 있는데 조건이 있다. 하이브리드 냉각 시스템, 배터리 잔량, 가속 페달 밟은 깊이 등을 확인해 허용여부를 결정한다. 프리우스 HEV와 PHEV의 결정적 차이도 여기에 있다. 보다 강력한 전기 모터와 넉넉한 배터리 갖춘 PHEV의 전기차로 빙의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 제원에 따른 최대 전기 모드 주행거리는 64㎞다.
한편, 프리우스는 세대교체 때마다 효율을 높여 왔다. 기존 일본 연비측정 방식인 10·15와 2011년 이를 보완한 JC08 모드 기준, 1세대 28.0㎞/L, 2세대 35.5㎞/L, 3세대 38.0㎞/L, 4세대 40㎞/L의 순서로 치솟았다. 하지만 “너무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불만 때문에 지난해부터 WLTC 모드를 도입했다. 동시에 5세대의 연비도 28.6㎞/L로 주저앉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차이는 있다. 현재 야후 재팬이 신차 카탈로그 섹션에 띄운 정보에 따르면, 신형 프리우스(하이브리드, 앞바퀴 굴림) 오너 355명이 제시한 연비의 평균값은 21.41㎞/L. 국내 정부공인연비와 놀랍도록 비슷하다. 자동차 제조사와 수입원은 “세상에서 가장 가혹하다”며 불만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가장 현실적인 잣대로 삼을 연비인 셈이다.
전기 모드 제한적이나 제약도 적어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연비를 좌우할 요소는 여러 가지다. 파워트레인의 중심을 이룬 엔진도 여전히 중요하다. 지난 2015년 일본 출장 때 접한 토요타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프리우스 진화의 방향성은 다음의 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① 세계 최고 수준의 열효율 내는 엔진, ② 전기 모터의 소형화 및 출력밀도 향상, ③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향상이다.
이미 토요타는 4세대 프리우스에 열효율 40%의 가솔린 엔진을 얹은 바 있다. 일반적인 가솔린 엔진이 25~28%, 디젤 엔진이 30~38%인 점을 감안하면 ‘넘사벽’이다. 심지어 닛산은 2021년 열효율 50%의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기술을 완성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단위 시간 당 연비 향상 효과가 가장 극적인 건 연료를 전혀 태우지 않는 전기 모드다.
PHEV는 배터리를 추가로 담아 전기 모드를 극대화한다. 하지만 제조사가 약속한 효율 달성을 위해선 부지런한 ‘완속’ 충전이 필수다. 게다가 BEV에 버금가는 전기 장치를 갖춰 무겁다. 또한, EREV와 비교할 수 없이 빵빵한 엔진을 겸비해 가격도 비싸다. 비용과 무게, 장비와 성능, 혜택과 제약 등을 여러모로 따질 때 HEV가 제일 현실적인 친환경차다.
한편, 서행 중 가속하면서 시속 35㎞를 넘자 ‘삐빅’하는 소리과 함께 계기판에 ‘EV모드 해제됨, EV속도범위 초과’라는 문구가 뜬다. 곧이어 자동차 전용도로에 오르면서 확인한 리셋 후 누적 연비는 14.7㎞/L. 엔진이 밤새 싸늘히 식은 상태다 보니 최적의 온도 확보를 위해 부지런히 회전수 높이느라 출발 직후 전기 모드를 거의 쓰지 않은 탓이다.
눈에 띄지 않는 변화가 더욱 놀라워
하지만 일단 엔진을 달군 이후 전기 모드에 대한 프리우스의 집착은 치밀하고 집요하다. 시속 100㎞ 이상에서도 가속 중만 아니라면 수시로 은밀하게 엔진의 숨통을 끊는다. 연비는 택시 요금 올라가듯 꾸준히 치솟는다. 출발 후 20여 분이 지났을 때 이미 20㎞/L를 넘었다. 이날 아침 기온이 꽤 낮아 공조장치는 28℃, 바람세기 1단으로 틀어놓은 상태였다.
프리우스는 4세대 때 이미 전기 모터의 저항과 무게를 이전보다 20%씩 줄였다. 예컨대 배터리는 부피를 10% 줄이되 충전성능은 28% 높였다. 제조원가는 3세대 때 이미 1세대의 3분의 1까지 줄였다. 5세대 신형은 다시 한 번 효율을 높였다. 가령 트랜스액슬 모터 코일 끝단의 크기를 줄이고, 자석 레이아웃을 바꿔 전기적 손실을 13% 더 낮췄다.
새로운 윤활 구조와 저점도 오일로 기계적 손실도 줄였다. 하이브리드 배터리는 새로 개발한 리튬이온 셀을 적용해 출력밀도를 16% 높였다. 또한, 무게를 전혀 늘리지 않으면서 크기만 25% 더 줄였다. 그래서 프리우스의 진화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더욱 놀랍다. “마른 수건도 쥐어짜라”는 토요타 생산방식의 창시자 오노 다이이치의 격언을 떠오르게 한다.
내비게이션이 추천 경로를 수정해 고속도로 대신 도심 관통으로 계획을 바꿨다. 양재와 강남을 잇는 극심한 정체 구간에서 신형 프리우스는 묵묵히 전기 모드를 고집했다. 주행 중 회생제동과 엔진을 이용한 충전을 수시로 병행해 하이브리드 배터리의 잔량을 55~60%로 유지한 덕분이다. 엔진의 소음과 진동이 전혀 없어 정체길 운전 스트레스가 훨씬 적었다.
자연스러운 제동감각
확연히 자연스러워진 제동감각도 한 몫 했다. ‘회생제동 협력제어’ 기능인데, 기존엔 제동 초기의 회생제동력에서 유압제동력으로 바뀔 때 브레이크 페달을 살짝 놓는 느낌이 이질적이었다. 진화 때마다 개선했다지만 변곡점을 완전히 지우진 못했다. 그런데 이번 신형에서는 거의 느낄 수 없었다. 1.6배 높인 출력에 맞춰 브레이크 시스템을 크게 수정한 결과다.
5세대 프리우스는 기존 축압타입 대신 기어 펌프에서 만든 유압을 직접 브레이크에 전는 온 디맨드 펌프 가압타입으로 바꿨다. 보다 선형적인 증압이 가능해져 제동과정이 한층 매끄럽고 여진도 줄었다. 토요타는 정숙성도 강조했는데, 기대가 컸던 탓인지 인상적이진 않았다. 자체 소음보단 저속에선 외부 소음, 중고속에선 노면 소음과 풍절음이 두드러졌다.
이제 이번 시승의 최종 성적표를 공개할 차례다. 이날 출근 주행거리는 총 28.8㎞인데, 무려 1시간 38분이나 걸렸다. 계기판의 트립미터에 나온 평균연비는 25.8㎞/L. 공인연비를 훌쩍 뛰어넘었다. 최근 서울~부산 프리우스 PHEV 시승 때도 경험했지만, 실제 연비는 트립미터 정보에 5% 안팎 뒤진다. 따라서 비교에 참고할 수치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게다가 연비는 하드웨어(자동차)만큼 소프트웨어(운전)에 따른 편차가 크다. 신형 프리우스를 ‘연료비 절감’ 명분으로만 접근하기엔 무리가 있다. 유류비를 상쇄할 가격 차이의 대안도 많아서다. 그러나 30년 가까운 진화로 입증한 신뢰성과 원조의 상징성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가치다. 나아가 역대 프리우스 중 최초로, 소위 ‘하차감’ 뿌듯한 외모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