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해발고도 900m에 자리한 강원도 태백시. 약 3만8,200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이곳에, 별안간 2,500여 명의 라이더들이 찾아왔다. 할리데이비슨의 연중 최대 행사 ‘26회 코리아 내셔널 호그 랠리(26th Korea National H.O.G.™ Rally, 이하 호그 랠리)’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태백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라이더들의 페스티벌에 직접 다녀왔다.
글 서동현 기자(dhseo1208@gmail.com)
사진 할리데이비슨, GM, 서동현
‘호그(H.O.G.)’의 뜻은 ‘HARLEY OWNERS GROUP’의 줄임말. 1983년 처음 창설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100만 명이 넘는 회원을 가진 초대형 규모의 모터사이클 동호회다. 국내에서는 1999년 첫 코리아 챕터 설립 이후로 강남과 광주·남양주·대구·대전·부산·송도·용인·원주·일산·창원·천안·한남 등 13개 챕터가 지역별로 생겨났다.
올해 호그 랠리가 열린 장소는 태백 종합운동장. ‘지역 상생’이라는 목적을 위해 리조트에서 진행했던 방식을 벗어났다. 태백시에서 영업하는 지역 상인들을 행사장으로 불러 먹거리 부스를 운영하고, 홈페이지 안내를 통해 시내 곳곳에 위치한 숙박업체를 예약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처음엔 ‘왜 불편하게 리조트가 아닌 운동장에서 진행하냐’라는 불만도 있었지만, 할리데이비슨 코리아의 의도를 듣고 기꺼이 수긍한 라이더들이 많았다고 한다.
5월 24일(금)부터 26일(일)까지 진행된 호그 랠리. 나는 행사 첫날부터 이튿날 오전까지 행사에 참여했다. 도착 후 가장 눈에 띄었던 부분은 길게 늘어선 업체별 부스다. 할리데이비슨 공식 의류를 시작으로 헬멧과 라이딩 기어, 통신 장비, 모터사이클 튜닝 부품 등 수십 개 부스가 행사장 한쪽에 자리했다. 경기도 용인의 유명 라이더 카페 루트1(ROUTE1)도 부스를 차리고 다양한 음료를 판매했다.
할리데이비슨 코리아는 주요 라인업과 함께 신차도 공개했다. 신형 로드 글라이드와 스트리트 글라이드가 그 주인공. 할리데이비슨의 대표 투어링 모터사이클이다. 새로운 공기역학 시스템과 엔진 냉각 시스템, 승차감을 개선하기 위해 바꾼 시트와 서스펜션 등이 주요 포인트다. 오메가 형태의 LED 램프와 날렵한 새들백, 주조 알루미늄 휠도 신형 글라이드 라인업의 핵심.
페어링 뒷면의 12.3인치 디스플레이도 눈에 띈다. 신형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Skyline OS를 비롯해 BOOM! Box GTS 오디오, 네 가지 주행 모드, 블루투스 기능 등을 쓸 수 있다. 브랜드의 메인 모델인 만큼, 현장에서도 많은 라이더들이 글라이드 듀오에 관심을 보였다. 스포스터 S와 팻보이 114, 로우라이더 ST, 브레이크아웃 117 등도 큰 인기를 끌었다.
또 다른 미국산 브랜드, GMC와 캐딜락도 현장을 찾았다. 특히 GMC는 국내에서 할리데이비슨과의 끈끈한 인연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시에라의 국내 출시 때부터 적재함에 할리데이비슨을 얹고 등장했으며, 2023 호그 랠리에도 참여했다. 아메리칸 헤리티지를 대표하는 두 브랜드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올해에도 시에라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할리데이비슨 라이더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캐딜락의 기함 에스컬레이드도 위엄을 뽐냈다. 하지만 적재함에 브레이크아웃을 올려둔 블랙 컬러 시에라는 호그 랠리의 풍경과 찰떡같이 어울렸다. 상담을 거친 고객들은 파워 해머 이벤트로 다양한 경품을 받아갔으며, 현장에서 시에라를 계약한 고객에게는 300만 원 특별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도 했다.
관람객은 예약 후 행사장 일대 도로에서 시에라를 직접 몰아볼 수도 있었다. 시승을 다녀온 사람들은 V8 6.2L 자연흡기 엔진을 품은 풀사이즈 픽업트럭에 푹 빠져 있었다. 최고출력 426마력, 최대토크 63.6㎏·m의 풍성한 힘은 물론 2024년형부터 들어간 ‘액티브 가변 배기 시스템’도 시에라의 감성을 한층 끌어올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행사장은 북적거렸다. 호그 랠리의 프로그램인 슬라럼 이벤트에도 라이더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슬라럼은 콘을 세워 만든 장애물 코스를 각자의 바이크로 빠르게 주파하는 종목. 다른 모터사이클 브랜드에서도 자주 진행하는 이벤트지만, 무게만 300~400㎏에 달하는 할리데이비슨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광경은 유독 특별했다.
이외에도 황소에 앉아 머리 위 공을 지키는 ‘로데오’와 직선 코스를 가장 천천히 달리는 ‘거북이 레이스’, 뒷좌석 탑승자가 목표 지점에 링을 던져 거는 ‘탠덤 링 던지기’ 등 다채로운 참여형 이벤트를 준비했다.
호그 랠리는 행사장 밖에서도 이어졌다. 바로 태백시와 함께 준비한 ‘스탬프 투어’다. 행사 기간 동안 태백의 각 명소를 방문해 도장을 찍어오면 경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다. 스탬프 투어의 목적 역시 지역 상생. 라이더들은 태백의 명소를 알아가고, 상인들은 타지에서 온 손님들 덕분에 활기를 찾을 수 있으니 상부상조다.
슬라럼도, 스탬프 투어도 참여하기 어려웠던 나는 시승을 나서기로 했다. 시승 부스에선 CVO 로드 글라이드와 CVO 스트리트 글라이드, 팻보이 114, 브레이크아웃 117, 소프테일 스탠다드 등 다섯 가지 시승차를 운영하고 있었다. 나의 선택은 팻보이 114. 글라이드 시리즈는 무게가 부담스럽기도 했고, 광폭 리어 타이어를 지닌 할리데이비슨의 느낌이 궁금해서 골랐다.
인생 첫 할리데이비슨과의 만남에 긴장했던 순간도 잠시. 팻보이 114는 생각보다 편안하고 친절했다. 낮은 시트고는 자신감을 키웠고, 부드럽게 붙는 클러치 덕에 시동 꺼트릴 염려는 줄었다. 304㎏의 공차중량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좌우로 조종하기도 쉬웠다. 까다로웠던 점은 양쪽 핸들에 각각 들어간 방향지시등 버튼과, 조금만 기울여도 바닥을 긁어대는 낮은 발판 두 가지뿐이었다.
가이드를 따라 도로에 나선 순간부터 할리데이비슨의 매력은 진하게 다가왔다. V-트윈 1,868㏄ 밀워키-에잇 114 엔진의 고동감이 쉴 새 없이 밀려든다. 공회전 상태에서는 물론이고, 엔진 회전수를 꽤 올려도 두툼한 진동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오른손을 비틀면 ‘우당탕’거리며 토크를 쏟아내는 맛이 일품이다. 과거 엔진에 비해 진동이 확연하게 줄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할리데이비슨 입문 라이더에게는 충분한 감성을 전달할 만하다.
코스 대부분을 시속 70~80㎞로 달렸다. 느려서 아쉽진 않았다. 짜릿한 스피드보다 정지 상태에서 가속하는 과정, 적당한 바람을 맞으며 느긋하게 크루징하는 여유가 좋았다. 무엇보다 시승 코스가 너무나도 괜찮았다. 오르막과 내리막, 적당하게 굽이진 길을 태백의 맑은 공기와 함께 누렸다. 이렇듯 호그 랠리는 할리데이비슨 오너가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첫날과 둘째 날의 마지막 일정은 화려한 공연으로 채웠다. 특히 이틀 차 저녁엔 데뷔 38주년을 맞은 록 밴드 부활을 초청했다. 참가자끼리만 즐기기엔 아까워서였을까, 할리데이비슨 코리아는 행사장 문을 활짝 열고 지역 주민들까지 불렀다. 태백시 상인 초청과 스탬프 투어로 시작한 지역 상생이라는 목표를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축제로 마무리했다.
셋째 날 아침, 모든 참가자들이 종합운동장 입구에 집결했다. 호그 랠리를 마무리하는 ‘그랜드 투어’ 시간. 행사에 참여한 라이더들이 무리 지어 태백의 자연으로 뛰어든다. 안전한 그룹 라이딩을 위해 태백경찰서도 지원에 나섰다. 경찰차 뒤에서 2,000대에 가까운 할리들을 통솔한 주인공은 GMC 시에라. 플래그십 픽업트럭과 아메리칸 투어링 모터사이클은 마치 한 지붕 식구인 듯 궁합이 맞았다.
국내 할리데이비슨 팬들의 26번째 축제가 끝났다. 커스텀 킹 선발대회와 소프테일 스탠다드 래플 등 참여형 이벤트는 기본,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들을 위한 기부 라이딩까지 함께하며 깊은 의미를 더했다. 할리데이비슨 브랜드의 분위기와 제품의 매력을 알아갔던 호그 랠리. 해를 거듭할수록 참가자 수가 늘어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