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로 성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할 무렵 걸리는 병(?)이 있다. 대표 사례가 아이패드병과 맥북병이다. 공통점은 없을 땐 갖고 싶어서 관련 글과 영상을 밤새도록 찾아본다. 완치 방법은 오직 구매 뿐. 큰 기대에 비례하는 실망을 통해 치료될 수 있다. 그런데 미니 쿠퍼 C 3-도어가 선물한 ‘미니병’은 조금 달랐다. 시승으로 치료하려 했지만, 오히려 증상은 더욱 악화됐다.
글 김규용 기자(kyuyongk98@gmail.com)
사진 MINI, 김규용 기자
미스터 빈의 로완 앳킨슨, 비틀즈의 존 레논, 명품 의류 브랜드를 설립한 폴 스미스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유명인들이 사랑한 차 미니. 그들의 미니는 지금보다 훨씬 앙증맞은 크기와 디자인을 지녔다. 영국 BMC(British Motor Corporation)가 1959년부터 2000년까지 생산한 오리지널 미니는 길이 3m가 살짝 넘는 작은 차체에 성인 4명이 시트 하나씩 꿰찰 수 있는 실용성까지 겸비했다.
미니는 BMW의 품에서 새로운 모델로 탄생한다. 동그란 헤드램프와 특유의 비율은 그대로 유지하되 덩치를 키웠다. 그리고 세대를 거듭하며 시나브로 몸집을 불리고 성격을 누그러트렸다. 미니가 항상 강조하는 ‘고-카트 필링’은 일반인들에겐 지나치게 불편했다. 이에 미니는 오랜 시간을 들여 운전 재미와 승차감 사이의 교차점을 조율하고 있다.
1. 익스테리어
4세대에 해당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미니 고유의 디자인은 그대로다. 특히 3-도어 모델에겐 ‘아이코닉’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살짝 솟아오른 원형 헤드램프와 넓은 그릴은 여전히 귀엽다. 크록스 지비츠처럼 차체 여기저기 붙어있던 장식과 엠블럼은 덜어냈다. 겉모습은 상위 트림 미니 쿠퍼 S와 큰 차이 없다. 그릴 테두리를 블랙으로 마감하고 S 로고를 뺀 정도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3,875×1,745×1,450㎜. 휠베이스는 2,495㎜로 모든 수치가 미니 쿠퍼 S와 동일하다. 전장 대비 휠베이스 비율만 본다면 전기차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옹골차다. 휠 사이즈는 17인치로 트림에 따라 디자인이 다르다. 하얀색 사이드미러와 지붕도 쾌활한 분위기를 낸다.
안팎으로 둥글둥글한 테마 속 유일한 삼각형이 시선을 끈다. 바로 리어램프다. 그 속에 들어간 유니언 잭 형상도 이전보다 간결하다. 흔히 시간이 지나면서 ‘뇌이징’이 된다고 하던데, 아쉽게도 나에겐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운전할 땐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점을 위안 삼는다. 리어 범퍼 속 마침표 같던 머플러도 깔끔하게 지웠다.
2. 인테리어
실내는 한층 단순하게 변신했다. 스티어링 휠 뒤에 있던 계기판마저 과감하게 덜어냈다. 대신 대시보드 가운데 9.4인치 원형 OLED 디스플레이에서 필요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시동버튼과 기어레버 등 중요한 기능들은 디스플레이 아래 토글 바에 정리했다. 편의성은 좋지만 버튼들의 소재와 마감은 조금 아쉽다. 센터 암레스트 안에 숨어있던 무선충전 패드도 밖으로 꺼냈다.
최신 트렌드대로 실내 버튼들을 줄인데다가, 전례 없는 원형 디스플레이를 넣은 탓에 편의성에 대해 걱정했다. 다행히 동그란 모니터 속 미니 OS 9은 편의성으로 꽉 찼다. 테두리에 현재 출력과 연료량, 공조 상태 등을 띄우고 12시 방향에 속도를 크게 표시한다. 중앙의 커다란 지도까지, 전체적으로 시인성이 좋다. 무작정 가로로 길쭉한 요즘 차들의 화면보다 활용성이 뛰어나다.
대시보드와 시트 등 실내에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했다. 특히 도어트림과 대시보드에 직물을 활용해 안락한 분위기를 냈다. 여기에 의외로 넓은 공간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차체는 작지만 시트 포지션이 낮고 천장이 높아 만족스러운 머리 공간을 만든다. 2열을 과감하게 포기한다면 다리 공간도 충분하다. 문짝이 넓어 타고 내릴 때도 부담이 적다.
2열은 1열 시트를 접고 들어갈 수 있다. 공간은 역시 성인이 타기엔 힘들다. 대신 어린 아이들이 짧은 거리를 이동하기엔 충분하다. 선루프로 개방감을 챙겨 시야가 답답하지도 않다. 트렁크 공간은 차급에 맞게 작다. 기본 용량은 210L. 뒷좌석 시트를 접는다면 725L까지 확장할 수 있다. 천장을 2열까지 높게 유지한 덕분에 부피가 큰 짐을 넣기에도 수월하다.
3. 파워트레인 및 섀시
구형 쿠퍼 3-도어의 기본형 모델은 직렬 3기통 엔진을 사용했다. 해외에서는 여전히 3기통 엔진을 고를 수 있는데,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신형 미니 쿠퍼 3-도어는 모두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엔진을 쓴다. 대신 S 모델보다 출력을 소폭 낮춰 최고출력 163마력, 최대토크 25.5㎏·m를 낸다. 여기에 7단 DCT 변속기를 엮었다. 0→100㎞/h 가속 시간은 7.7초, 복합연비는 12.5㎞/L다.
풀 체인지 모델이지만 이전과 같은 UKL1 플랫폼을 사용했다. 그동안 후륜구동 자동차를 만들던 BMW가 처음 내놓은 전륜구동 플랫폼이다. 엔진을 가로로 배치하고 실내 공간 활용성을 높인 점이 특징이다.
4. 주행성능
이번 시승은 특별히 어딘가를 향하지 않았다. 대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미니만의 매력을 경험했다. 크게 만족했던 부분은 ① 승차감 ② 효율성 ③ 운전 재미다. 마지막 포인트인 운전 재미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일반적으로 차는 작고 가벼울수록 재밌다. 그 작은 차에 미니 배지가 붙어 있다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신 의외로 만족스러운 승차감과 효율성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서울역 인근에서 시승차를 받고 곧장 용인으로 향했다. 고속도로에 오르기 전, 도심 속에서의 첫인상은 긍정적이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도 DCT 특유의 울컥거림을 느낄 수 없었다. 자차로 타고 있는 1세대 코나와 비교해보니 그 체감이 더욱 컸다. 토크컨버터식 변속기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여기에 엔진의 부드러운 진동까지 더해 시내 주행 시 만족감이 높았다.
다음날 아침, 스케줄을 위해 수원에서 의정부로 경로를 설정했다. 새벽 시간대라 정체는 없지만 교통량은 많았다. 시속 80~100㎞로 꾸준히 달렸는데, 19.2㎞/L라는 뜻밖의 높은 연비를 기록했다. ‘최신 BMW 차종처럼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들어갔나?’하며 착각했을 정도. 확실히 고속 주행에선 1,345㎏의 가벼운 무게와 듀얼클러치 변속기의 효율성이 돋보였다.
오후 6시의 퇴근길. 서울 신논현역 근처 사무실에서 경기도 화성까지 40㎞의 구간을 달렸다. 강남 시내를 관통해 과천의왕고속화도로까지 지나 시승 코스로 활용하기 좋다. 도심 환경에서 사소한 단점을 찾을 수 있었다. 미니 쿠퍼 C에는 기본적인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옵션만 제공한다.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유지 어시스트 등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플러스’ 옵션은 미니 쿠퍼 S부터 선택할 수 있다.
또한 아이들링 스탑 앤 고 시스템이 엔진을 끄는 시간이 짧고, 시동을 다시 걸 때 진동이 제법 있다. 스티어링 휠로 진동도 가늘게 들어온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NVH 사이 살짝 아쉬운 흠이다.
미니를 시내에서만 타긴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북악스카이웨이에 잠시 들렀다. 짧은 코너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도심 속 산길이다. 적당한 출력과 작은 몸집을 가진 미니에게 딱 어울리는 장소다. ‘고-카트 모드’를 활성화하자 일순간에 분위기를 바꾼다. 의외로 가속 페달과 스티어링 휠 변화의 폭이 크다. 순간적으로 오른발을 깊게 밟으면 앞머리가 약간 들썩일 정도다.
조향 감각이 값비싼 스포츠카처럼 예리하진 않다. 다만 원하는 방향으로 정직하게 앞머리를 집어넣는다. 그 뒤로 지체 없이 엉덩이가 함께 따라가 고-카트 필링을 완성한다. 출력의 목마름이나 LSD같은 전자장비의 필요성은 떠오르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신체 조건만으로 요리조리 움직이는 감각에 절로 웃음이 난다. 브레이크 페달 무게감도 적당해 조절하기 편하다.
5. 총평
누군가에겐 그저 크기가 작아 공간이 부족한 차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구매 리스트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크기 대비 함께하는 즐거움이 큰 차가 바로 미니 쿠퍼다. 재치 있는 운전감각과 발랄한 외모, 유니크한 3도어, 승차감과 효율성까지 갖춘 더할 나위 없는 시티카로 요약할 수 있다. 만약 나처럼 ‘미니병’에 걸렸다면, 우선 전시장에서 상담부터 받아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