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1일, 현대모터스포츠팀 초청으로, 일본 나고야 인근의 토요타시를 찾았다. 2024년 세계 랠리 선수권 대회(WRC)의 대미를 장식할 일본 랠리의 무대다. 이날 토요타 스타디움을 찾아 현대 월드 랠리팀의 서비스 파크를 둘러보고, 공식 개막식과 수퍼 스페셜 스테이지1을 지켜봤다. 올해 현대팀은 제조사와 드라이버를 아우른 통합 우승을 노린다.
나고야(일본)=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현대자동차, 김기범
일본 랠리의 중심, 토요타 스타디움
가을 정취 가득한 농촌 풍경 너머로, 독특한 모양의 콘크리트 건물이 눈에 띈다. 바닥부터 켜켜이 쌓아 올렸다기보다는 공중에서 덩어리째 ‘쿵’ 내려앉은 느낌이다. 2001년 준공한 수용인원 4만5,000명 규모의 토요타 스타디움이다.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 인근 토요타시에 자리한다. 향토 기업의 이름을 딴 도시로,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 토요타의 고향이다.
토요타 스타디움은 1997년부터 4년 동안 340억 엔 들여 완공했다. 설계는 일본 건축가 구로카와 기쇼(黒川紀章)가 맡았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도 그의 작품이다. 토요타 스타디움은 현재 ‘세계랠리선수권대회(이후 WRC)’ 일본 랠리의 시작점이다. 지난 11월 21일, 올해 일본 랠리의 시작을 알릴 ‘수퍼 스페셜 스테이지(SSS)1’ 치르는 현장을 찾았다.
WRC는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주관하는 랠리 대회다. 1973년 시작해 반세기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포뮬러1(F1), 세계내구선수권대회(WEC)와 더불어 세계 3대 모터스포츠로 손꼽는다. 1월 몬테카를로 랠리를 시작으로, 11월까지 유럽과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전 세계를 돌며 13회의 경기를 치러 드라이버와 제조사 부문 챔피언을 결정한다.
WRC는 개최 지역에 따라 아스팔트는 물론 진흙길과 자갈길, 눈길, 산길 등 다양한 형태의 비포장 노면에서도 치른다. 영하 25도의 칼바람부터 열기 머금은 황사까지 기후도 천차만별. 그래서 자동차 경주의 ‘철인경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경주차엔 운전 맡는 드라이버와 코스를 실시간으로 알려줄 코드라이버가 짝을 이뤄 탄다. 경기 중 수리도 이들의 몫이다.
레이스 준비로 여념 없는 서비스 파크
이날 토요타 스타디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주변 도로는 경기장 찾는 자동차와 인파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앞마당은 이미 축제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푸드 트럭은 맛있는 냄새와 연기를 피워냈고, 각종 체험 시설엔 긴 줄이 늘어섰다. 현대 N도 부스를 차렸다.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에 출전했던 경주차와 양산형 등 두 대의 아이오닉 5 N을 세웠다.
토요타 스타디움 앞엔 현대와 토요타, 포드 등 주요 팀의 ‘서비스 파크’가 자리한다. 해당 개최지 WRC의 베이스캠프로, 정비와 수리는 물론 경기 전략을 논의할 본부 역할도 겸한다. 담당자의 안내로 현대월드랠리팀의 서비스 파크를 둘러봤다. 공간은 크게 서비스와 부품, 타이어, 주방 및 식당으로 나눴다. 대부분 시설은 컨테이너와 트레일러 등 이동식이다.
실제로 서비스 파크의 시설과 장비는 WRC 일정에 따라 전 세계를 이동한다. 유럽에서는 트럭을 주로 이용하고, 대륙 넘나들 땐 항공 화물로 옮긴다. WRC 개최지에 따라 서비스 파크의 규모는 유동적이다. 가령 유럽에서는 상대적으로 넉넉한 부지에 2층짜리 이동식 건물을 써서 한층 여유롭다. 반면, 일본 나고야의 토요타 스타디움에서는 단층 시설을 쓴다.
서비스 공간은 석 대의 경주차 정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경주차가 엔진 숨통을 틀 때마다 고막이 부르르 떨었다. 서비스 파크 가장 바깥쪽엔 컨테이너를 개조한 주방이 자리한다.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 업체가 운영하는데, 하루 세끼와 간식까지 만든다. 심지어 빵도 매번 직접 굽는다. 팀과 함께 전 세계를 넘나들며 매번 70~90인분을 제공한다.
수퍼룸에서 지켜본 일본 랠리 개막식
인파의 행렬을 따라 토요타 스타디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식 개막식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현대모터스포츠팀은 아주 특별한 공간으로 초대했다. 바로 수퍼룸이다. F1의 패독 클럽처럼 참가팀의 VIP 손님이 편안하게 레이스를 관람할 수 있는 시설이다. 토요타 스타디움 2층에 자리하는데, 경기장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실내에서 식음료를 제공한다.
각 수퍼룸 앞엔 프라이빗 야외 관람석을 마련했다. 밖으로 나서니 장관이 펼쳐진다. 축구와 럭비 위한 115×78m 규모의 천연잔디 구장이 아스콘 포장과 방호벽 두른 SSS 코스로 완벽히 변신했다. 여기에 각 팀의 경주차가 일정한 간격 맞춰 늘어섰다. 경기장 스케일과 눈부신 조명 때문에 알록달록한 랠리카들이 토미카나 핫 휠 미니카처럼 앙증맞아 보였다.
오후 4시 50분, 국가 제창과 더불어 일본 랠리의 막이 올랐다. 타이틀 스폰서 ‘포럼8(FORUM8)’의 이토 유지 대표 개회사 선언과 함께 축포가 밤하늘을 훤히 밝혔다. 이후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에 따라 각 팀의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가 나란히 입장해 자신들의 경주차 옆에 섰다. 토요타 회장 아키오 도요다도 현장을 찾아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오후 7시 5분, SSS1의 막이 올랐다. 최대 경사 38°의 스탠드로 에워싼 토요타 스타디움이 굉음으로 달아올랐다. 한편, 일본 랠리를 포함 올해 WRC 시즌을 결산하는 시상식도 여기서 치른다. 2022년, 현대 쉘 모비스 월드랠리팀이 제조사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바로 이 자리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사흘 뒤 다시 애국가를 들을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