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에서 렉서스 LX 700h를 시승했다. 2021년 출시한 4세대를 기반으로, 지난해 새로 더한 LX 최초의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V6 3.4L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과 원반형 전기 모터 품은 10단 자동변속기를 얹고 네 바퀴를 굴린다. 이번 시승은 LX 700h의 화려한 안팎 이면에 숨은 야성을 확인할 기회였다. 가격은 1억6,797만~1억9,457만 원이다.
Written by Ki-beom Kim, Editor-in-Chief (ceo@roadtest.kr)
사진 렉서스코리아, 김기범
렉서스에서 가장 비싸고 강력한 SUV

‘위기는 곧 기회다.’ 지난 3월 18일, 강원도 인제에서 치른 렉서스 LX 700h 시승회를 함축할 격언이었다. 하필 전날부터 강원도 일부 지역에 40㎝ 넘는 눈 폭탄이 쏟아졌다. 눈 뜨고 걷기조차 힘들 만큼 드센 눈발. 때문에 렉서스코리아가 준비한 험로 코스의 난이도 또한 느닷없이 치솟았다. 아직은 낯선 LX 700h의 정체성이 오히려 선명히 드러난 계기였다.
LX는 렉서스 최초의 SUV다. 지난 1996년, LX 450으로 등장했다. 이후 1998년 2세대, 2008년 3세대, 2021년 지금의 4세대로 거듭났다. 이번에 국내에 출시한 LX 700h는 지난해 4세대에 새로 더한 ‘신상’. LX 30년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하이브리드 차종이다. 현재 국내 판매 중인 렉서스의 새로운 꼭짓점이기도 하다. 가장 비싸고 제일 강력해서다.
개인적으로도 LX 시승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승 전엔 ‘과잉이 미덕’인 풀 사이즈 SUV 중 하나 아닐까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행사장 풍경부터 범상치 않았다. 앞마당엔 LX 700h 한 대가 큼직한 바위에 앞 발 하나 걸친 채 다리를 쭉 찢고 있었다. 래퍼의 뮤직 비디오 배경에서 드럼통 같은 초편평비 타이어 끼우고 어슬렁거리는 ‘무늬만 SUV’와 차원이 달랐다.

이날 누빌 험로 또한 LX의 성향을 엿볼 단서. 진흙탕은 물론 무릎 이상 깊이의 계곡을 넘나들었다. 중장비로 아찔한 경사로 만들고, 책상만한 바위도 무더기로 쌓았다. 시승 무대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소유한 부지. 평소 수륙양용차 ‘아르고’ 체험장으로 쓴다. 지난해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고객 시승이나 4월 초 기아 타스만 미디어 시승 등 행사용으로 대여한다.
우아하고 차분한 기존 렉서스 SUV의 이미지를 감안하면, 강원도 인제의 행사장은 재난 현장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찰떡궁합·해피엔딩이었다. 렉서스 LX의 뿌리가 토요타 랜드크루저에 맞닿은 까닭이다. 실제로 이번 렉서스 LX의 ‘타카미 요쿠오(横尾貴己)’ 치프 엔지니어(CE)는 개발명 ‘VJA300’의 최신 토요타 랜드크루저 개발 총괄이기도 하다.
뼛속부터 기능에 방점 찍은 강경파

그동안 LX는 진화를 거듭하며 맷집을 키워 왔다. 차체 길이가 좋은 예다. 4,821㎜로 시작해 2세대는 4,890㎜로 늘렸다. 3세대 땐 기어이 5m하고도 5㎜까지 키웠다. 이번 4세대는 5,085㎜. 반면, 휠베이스는 세대와 상관없이 2,850㎜로 변함없다. 렉서스는 ‘황금비율’이라고 부른다. 타카미 CE는 “거주성과 험로 주파성을 양립한 이상적 수치”라고 설명했다.
휠베이스를 못 박은 부작용도 있다. 실제보다 짤막해 보인다. 우람한 덩치에 비해 앞뒤 바퀴 간격이 좁아서다. 서스펜션까지 높이면 일부러 비율 왜곡한 미니카처럼 껑충해진다. 기계적 표정과 경직된 몸매의 동생뻘 GX는 이 비율과 궁합이 좋다. 반면 LX는 큼직한 장화 신은 개구쟁이처럼 위트가 스몄다. 근엄한 얼굴과 귀여운 비율의 기발한 조화 때문이다.



물론 렉서스 기함으로서의 정체성은 100m 앞에서 봐도 뚜렷하다. 덩치와 생김새 모두 LS의 ‘키 컸어요’ 버전으로 받아들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프레임 없이 얼굴의 상당한 면적에 왕창 녹아든 스핀들 그릴이 대표적. 문득 시승 전 찾아본 미국 오너 포럼의 댓글이 떠올랐다. “왜 얼굴 전체를 그릴로 만들지 않는 거죠?” 하지만 딱히 불만은 없다. 잘 생겼으니까.
렉서스가 밝힌 LX의 디자인 테마는 ‘품격 있는 세련미(Dignified Sophistication)’. 옆과 뒷모습 모두 반듯한 수평 라인을 강조했다. 전반적으로 선과 면이 굵고 대담하다. LX의 위상과 능력을 암시하는 단서인 셈이다. 험로에 특화한 오버트레일 트림은 그릴과 휠 아치를 검게 물들였다. 타이어도 18인치로, 나머지 트림의 22인치보다 사이드 월이 두텁다.
LX는 GX와 더불어 렉서스 유일의 프레임 차체 SUV. 이번 LX의 밑바탕은 ‘GA(Global Architecture)-F’다. 토요타 4러너와 랜드크루저, 타코마와 툰드라 등 중형과 대형 SUV 및 픽업이 나눠 쓴다. 아담한 UX나 NX는 물론 LX와 휠베이스가 같은 RX와 RZ 등 모노코크 보디의 여느 렉서스 SUV와 뼛속부터 다르다. LX의 차별 포인트이자 핵심 가치다.
LS나 LM 뺨치게 호화스러운 실내


외모처럼 속살 또한 3세대 LX와 전혀 다르다. 핵심은 디지털화. 디스플레이 금단 현상의 후폭풍이 몰아쳤다. 각각 12.3인치의 풀 디지털 계기판과 센터페시아의 터치 정보창, 그 밑의 7인치 유틸리티 디스플레이까지 3개나 심었다. 화려하고 농밀한 그래픽도 압권. 기능 조작 때마다 LX의 정교한 디지털 이미지가 운전대 너머와 센터페시아에서 수시로 뜬다.
반면 사용자 편의성은 다소 떨어진다. 기함의 위상에 맞춰 기술과 장비를 욕심껏 챙긴 결과다. 가령 대시보드 상단 모니터는 출고 후 붙인 듯 조화가 애매하다. 계기판과 유틸리티 디스플레이의 반응도 살짝 느리다. 운전 모드 바꾸는데 버튼과 다이얼을 번갈아 만져야하는 등 직관성도 아쉽다. “험로에서 오조작할 경우를 대비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그러나 이게 최선인지는 모르겠다. 기능은 물론 미적으로도 잘 정돈한 렉서스 GX의 실내와 대조적이다.



실내 공간은 덩치가 주는 기대에 살짝 못 미친다. 기둥과 시트, 센터터널 등 구성요소의 크기 또한 ‘XL’인 까닭이다. LX뿐 아니라 대부분 풀 사이즈 SUV의 특징이다. 트렁크는 유독 동급 맞수보단 아담하다. 5인승 기준 204L다. 바닥에 숨긴 288㎾ 니켈수소 배터리 때문이다. 뒷좌석을 접으면 1,767L까지 늘어난다. 그러면 골프백 4개를 꿀떡 삼킨다.
LX 700h 실내의 소재와 촉감은 전형적인 렉서스다. 은은한 디자인과 차분한 색감이 고급스럽다. 가격에 대한 명분을 주기 충분하다. 특히 VIP 트림의 독립 뒷좌석은 LS나 LM 뺨치게 호사스럽다. 뒷좌석은 프레임에서 올 진동을 막기 위해 플로어에서 간격을 띄웠다. 가뜩이나 키 큰 SUV인데, 시트 포지션마저 높다. 교황 전용차 뒷좌석에 탄 기분이다.
기능은 차고도 넘친다. 럭셔리와 오버트레일은 앞좌석, VIP 트림은 운전석과 좌우 뒷좌석에 열선과 통풍, 마사지가 기본. VIP의 뒷좌석은 48°까지 뒤로 눕힐 수 있다. 특히 오른쪽 뒷좌석에서는 등받이와 종아리 받침대, 조수석 뒤편 발받침을 활용해 ‘무중력 자세’로 단꿈에 빠질 수 있다. 도요다 아키오 회장의 토요타 센추리 SUV 뒷좌석이 부럽지 않다.
‘오버스펙’ 수준의 막강한 험로성능



그런데 웅장한 덩치와 화려한 속내는 LX가 가진 매력의 절반에 불과했다. LX 700h는 헝클어진 맨땅에서도 제왕의 지위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특히 험로에서 ‘오버스펙’ 유전자를 오롯이 드러냈다. 차고와 감쇠력, 스프링 탄성계수를 변화무쌍하게 주무르는 서스펜션과 풀타임 사륜구동, 10단 기어를 20단으로 뻥튀기 시킬 트랜스퍼 케이스가 좋은 예다.
앞뒤 구동력을 50:50으로 고정할 차동제한장치(디퍼렌셜 록)도 전 트림 기본이다. 오버트레일은 앞뒤 차축의 좌우 구동력마저 반반으로 고정할 수 있다. ‘멀티 터레인 셀렉트(MTS)’도 갖췄다. 6가지 지형 중 하나를 고르거나 ‘오토’ 모드로 두면 알아서 준비하고 실행한다. 그 결과 구동력과 제동력, 차고 조절과 변속을 조율한 ‘오마카세’ 세팅을 대령한다.


신체 조건도 우월하다. 최대 313㎜의 최저지상고 기준으로, 진입각 27.4°, 램프 오버각 28°, 이탈각 26.3°, 도강 깊이 700㎜를 뽐낸다. 과정은 심오하되 결과는 간결했다. 고수의 특징이다. LX 700h가 생생한 증거다. 스릴을 의도한 특설 무대를 심드렁하게 누볐다. ‘크롤(Crowl) 컨트롤’ 덕분에 가감속 필요조차 없이 산과 바위, 계곡을 꿀렁꿀렁 헤쳤다.
험로에서 회전반경 줄여주는 ‘턴 어시스트’ 기능 또한 요긴했다. 로 기어 상태에서 버튼 누르고, 운전대를 최대한 꺾은 뒤 가속 페달 밟으면 준비 끝. 그러면 코너 안쪽 바퀴를 띄엄띄엄 잠근다. 그 결과 해당 바퀴를 구심점 삼아 순식간에 홱 앞머리를 돌린다. 메르세데스-벤츠 전기 G-클래스의 ‘G턴’보다 쓰기 쉽고 사용범위가 넓다. 훨씬 현실적인 기능이다.
전동화의 장점도 빛을 발했다. 저속에서 강하고 균질한 토크로, 험로 주행의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줄였다. LX 700h의 심장은 LX 600h의 V6 3.4L(3,445㏄)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에 원반형 전기 모터 겸 발전기와 클러치 품은 10단 ‘다이렉트 시프트’ 자동변속기를 더한 구성. 렉서스 LX 700h의 시스템 최고출력은 464마력, 최대토크는 66.3㎏·m다.
가장 호화로우면서도 제일 터프한 모순


LX 700h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병렬식이다. 행성기어의 조합으로, 무단변속기 효과 내는 직병렬식과 다르다. 사륜구동 또한 전기 모터로 뒷바퀴 굴리는 ‘E-4’ 대신 실제 톱니 맞물린 기계식. 산도 넘고 강도 건너는 LX의 특성을 감안한 선택이다. 장단점이 있다. 가령 전기 모드가 제한적이다. 대신 대응 토크가 높다. 파워트레인의 반응도 한층 직관적이다.
험로 저속 주행 때를 제외하면, 전기 모터의 존재는 의식하기 어렵다. LX 700h의 전동화 심장은 전기차 체험보단, 엔진 회전수가 낮아 과급압이 충분히 차오르지 않을 때 터보차저의 추진력을 보완하는 역할에 방점 찍은 결과다. 공인연비도 성향을 가늠할 단서. 고속도로가 8.5㎞/L로, 도심과 복합을 웃돈다. 렉서스의 직병렬식 하이브리드 차종과 정반대다.

포장도로에서 급가속 할 땐 제법 기름진 사운드와 더불어 보닛 들썩이며 뛰쳐나간다. 적당히 느슨한 조작감과 호쾌한 추진력 등 풀 사이즈 SUV 특유의 기백이 꼿꼿이 살아 있다. 북미 법인이 밝힌 LX 700h의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6.4초. 렉서스는 LX 700h 역시 ‘렉서스 드라이빙 시그니처’를 강조했다. 운전이 즐거운 차를 지향하는 손맛의 레시피다.
실제로 TNGA 개념 도입 이후 렉서스는 운전감각을 크게 개선했다. 하지만 LX 700h는 같은 슬로건으로 포장하기엔 결이 뚜렷이 다르다. 프레임 보디 특성도 있고, 트레일링 암 방식의 뒤 서스펜션도 명백히 도로 밖을 겨냥했다. 신박한 유압 기술로 롤과 피칭을 줄여도, ‘야생’에 뿌리 둔 성향은 감출 수 없다. 온오프로드를 아우르기 위한 트레이드오프다.

렉서스 LX 700h를 간추릴 핵심은 ‘이율배반(二律背反)’. 호텔 앞이 어울릴 듯한데, 알고 보면 오지 전문이다. 기술과 장비, 기능의 초점도 여기에 맞췄다. 그래서 가장 호화로우면서 제일 터프하다. 때로 생존마저 좌우할 신뢰성은 랜드크루저의 명성과 겹친다. 모든 면에서 최고이고 싶은 욕망과 집착이 낳은 결실이다. 모름지기 ‘드림 SUV’라면 이래야 한다.
[참고기사] 렉서스 LX 700h 프리뷰
렉서스 LX 700h VIP의 주요 제원 | |
엔진 | |
Format | V6 가솔린 트윈터보 |
배기량 | 3,444㏄ |
보어×스트로크 | 85.5×100㎜ |
최고출력 | 408마력(PS)/6,750rpm |
최대토크 | 66.3㎏·m/2,000~3,600rpm |
시스템 총 출력 | 464마력(PS) |
압축비 | 10.5:1 |
연료공급장치 | 전자제어 직간접 분사(D-4ST) |
연료탱크 | 68L |
권장연료 | 고급휘발유 |
Transmission | |
Format | 자동 10단 다이렉트 시프트/로 기어 |
Rolling Method | 네 바퀴 굴림(풀타임) |
Body | |
Format | 5-door SUV |
Structure | 보디 온 프레임 |
Length×Width×Height | 5,095×1,990×1,895㎜ |
Wheelbase | 2,850㎜ |
Tread forward|backward | 모두 1,675㎜ |
Lowest ground elevation | 210㎜ |
Tolerance weight | 2,840㎏ |
Rotation diameter | 12m |
Chassis | |
Steering | Rack and pinion |
Suspension Front|Rear | 더블위시본/멀티링크(트레일링 암) |
Brake Front|Rear | 모두 V디스크(354|335㎜) |
Tyre front|rear | 모두 265/50 R 22 |
Performance | |
0→100 km/h acceleration | 6.4초 |
Top speed | 약 209㎞/h |
Certified fuel economy (combined) | 8.0㎞/L |
Carbon dioxide emissions | 210g/㎞ |
Origin | Japan |
Pricing | 1억9,457만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