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WRS’는 ‘포르쉐 월드 로드쇼’의 이니셜이다. 독일 본사가 주관해 해마다 전 세계 돌며 치르는 ‘포르쉐 시승 뷔페’다. 주력 차종의 매력을 알려 판매로 유도하기 위한 행사다. 지난 8월 말, PWRS 팀이 경기 용인의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를 찾아 고성능 엔진 및 전동화 차종을 한 보따리 부려 놨다. 이날 나의 이성은 전기를 좇았지만, 감성은 엔진에 반응했다.
文 金基範編集長(ceo@roadtest.kr)
사진 포르쉐 코리아, 김기범
1. 718 스파이더 RS
“이번엔 유독 센 놈들로 준비했어요.” 포르쉐 코리아 주현영 이사의 귀띔을 듣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했다. 첫 순서를 함께 할 포르쉐는 718 스파이더 RS. 레이스 뛰는 911의 엔진 품은 박스터다. 718 카이맨 GT4 RS의 오픈 탑 버전이기도 하다. 밸런스 탁월한 미드십 구조와 오픈 탑, 911 GT3(컵 카 포함) 엔진의 울트라 우성형질만 모은 셈이다.
차세대 718은 이미 순수 전기차로 변신을 예고한 상태. 어쩌면 718 스파이더 RS는 미드십 팬을 위한 포르쉐의 마지막 선물일는지 모른다. 좌석 뒤의 수평대향 6기통 4.0L 자연흡기 엔진은 무려 9,000rpm까지 회전한다. 최고출력은 500마력, 최대토크는 45.9㎏·m다.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3.4초, 최고속도는 시속 308㎞다. 911 S/T보다 빠르다.
포르쉐 스파이더의 소프트 탑은 전통적으로 수동이다. 덕분에 718 박스터보다 16.5㎏ 가볍다. 아예 떼어내 8㎏의 무게를 더 줄일 수도 있다. 한편,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와 포르쉐 토크 벡터링, 볼 조인트 서스펜션 베어링, 20인치 단조 알루미늄 휠도 갖췄다. 또한, 718 카이맨 GT4 RS보다 스프링과 댐퍼 비율을 낮춰 좀 더 편안하다.
첫 세션은 짐카나. 고도의 정밀함과 민첩성을 앞세운 718 스파이더 RS를 위한 무대다. 과연 추진력과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런데 718 스파이더 RS에 대한 소감은 이게 전부다. 코스가 너무 짧아서다. 슬라롬의 탈을 쓴 짐카나인데, 완주에 2분도 걸리지 않았다. 사실 차가 아까웠다. 기본형 718 박스터였어도, 내 기록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테니.
2. 타이칸 터보 S 크로스 투리스모
“다음 순서로 이동해주세요.” 원래 PWRS는 하루 종일 프로그램이다. 참가비만 100만 원이니 응당 그래야 할 듯하다. 하지만 미디어 데이 마지막 날은 반나절로 압축했다. 그래서 숨 돌릴 짬 없이 옮겨 다니기 바빴다. 이번엔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직선로의 특설 코스로 향했다. 거기엔 ‘전천후 왜건’ 신형 타이칸 터보 S 크로스 투리스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타이칸보다 뒷좌석 승객의 머리 공간이 한층 여유롭다. 또한, 테일 게이트 열면 최대 1,200L 이상의 짐 공간이 펼쳐진다. 타이칸 스포츠 투리스모와 달리 크로스오버 성향을 강조했다. 718 스파이더 RS처럼 국내에서는 공식 수입으로 만나볼 수 없다. 흔치 않은 기회다. 하지만 마트 시식처럼 맛보기로 프로그램 짜다 보니 이번 체험 역시 제한적이었다.
짐카나가 횡방향 이종격투기였다면, 이번엔 종방향 물리력 싸움. 급가속에 이은 급제동이 전부다. 타이칸 터보 S 크로스 투리스모의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2.5초. “2.6초 이하도 기술적으론 가능해요. 다만, 일반 타이어론 어렵죠.” 2016년, 남아공 키알라미 서킷에서 만난, 911 터보 개발총괄 에르하르트 뫼슬레(Erhard Mössle) 박사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결국 해냈다. 막강한 전기 파워트레인과 섬세한 제어 시스템, 여기에 맞춰 개발한 타이어 기술로 완성한 시너지다. 전기차로 구현한 론치 컨트롤 기능을 활성화하자 기묘한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 떼는 순간 심장 쫄깃한 가속이 시작된다. 다른 기자들 체험 때 촬영을 시도했는데, 워낙 빨라 결국 제대로 된 사진조차 못 건졌다.
3. 마칸 터보 일렉트릭
우리 조의 세 번째 세션은 ‘핸들링 2’. SUV 트랙 주행이다. 시승차는 전기 마칸과 엔진 카이엔 시리즈. 마칸은 포르쉐 전체 판매의 25%를 차지하는 인기 차종이다. 지난 1월, 2세대로 거듭났다. 1세대 마칸과 기술적 공통분모는 찾기 어렵다. 심장과 뼈대가 다른 까닭이다. 신형 마칸은 순수 전기차로만 나온다. 그래서 이름도 마칸 일렉트릭(이후 마칸)이다.
개인적으로 마칸은 2014년 데뷔 때 독일 라이프치히 포르쉐 공장의 트랙에서 처음 몰았다. 당시 포르쉐는 은근히 마칸을 ‘카이엔 동생’보단 ‘작은 911’로 정의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아우디 Q5와 뼈대 나눈 ‘출생의 비밀’을 희석시킬 묘안이었다.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2세대로 거듭난 마칸은 아직 911도 가지 않은 순수 전기차의 길로 먼저 들어섰다.
신형 마칸의 밑바탕은 아우디와 개발한 800V 전기차 전용 ‘PPE(Premium Platform Electric)’. 100㎾ 용량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바닥에 깔았다. DC 급속충전 용량은 최고 270㎾다. 1회 충전 주행거리(복합)는 유럽 WLTP 기준으로, 마칸 4가 613㎞, 마칸 터보가 591㎞다. 최고출력은 마칸 4 일렉트릭이 408마력, 마칸 터보 일렉트릭이 639마력이다.
마칸 4와 터보의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각각 5.2초, 3.3. 방금 전 속칭 ‘제로백’ 2.5초를 잠깐 경험했지만, 트랙에서 수시로 등짝 후려치는 마칸 터보의 위력이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다. 또한, 전기차 특성상 초기 가속이 강렬하고 파워 제어가 정교해 트랙 주행 경험이 필터 씌운 사진처럼 결점 없이 뽀송뽀송했다. 그만큼 성취감 또한 컸다.
4. 911 GT3 RS
포르쉐는 업계 최고의 영업이익률을 뽐낸다. 비결은 메뉴 관리. 현재 911 한 차종으로 17가지 모델을 만든다. 옵션까지 더하면 경우의 수는 까마득히 늘어난다. 또한, 911 안에서도 모델에 따라 성능과 특성에 확연한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지금 911의 끝판 왕은 어떤 모델일까? 바로 911 GT3 RS다. 레이스카와 양산차의 모호한 경계에 자리한 911이다.
실물로 만난 911 GT3 RS는 과격하다 못해 괴이했다. 멀리서 보면 익숙한 911의 실루엣.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차체 곳곳이 숭숭 뚫려 있다. 그 틈으로 후끈한 열기를 뿜어냈다. 뒷좌석 자리엔 롤 케이지가 들어찼다. 시트도 납작하고 딱딱하다. 스티어링 휠엔 서스펜션과 토크 벡터링, 트랙션 컨트롤 다이얼을 따로 마련했다. 딱 타임어택 앞둔 경주차다.
911 GT3 RS의 엔진은 수평대향 6기통 4.0L 자연흡기로 9,000rpm까지 회전한다. 여기에 7단 포르쉐 더블 클러치(PDK) 변속기를 물려 뒷바퀴를 굴린다. 냉각과 제동, 섀시 모두 레이스카 수준이다. 최고출력은 525마력과 공차중량 1,450㎏의 조합은 폭력적인 성능으로 수렴한다.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3.2초, 최고속도는 시속 296㎞다.
911 GT3 RS의 주행감각은 그야말로 블록버스터였다. 더없이 강렬하고 짜릿했다. 반응은 거칠지만, 왜곡이 없어 역설적으로 운전이 더 쉬웠다. 이날 전기 포르쉐 몰며 가상현실처럼 매끈한 감각에 반했다. 그러나 911 GT3 RS로 딱 두 랩 돌고 나니, 전기 포르쉐의 기억이 흐릿해졌다. 이성은 오롯이 전기차를 가리키는데, 가슴은 여전히 엔진에 반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