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태안에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를 만든 지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국내에서 가장 넓은 규모의 드라이빙 센터인 만큼 즐길 거리도 다양하다. 하지만 드라이빙 센터의 꽃은 역시 인스트럭터와 함께하는 운전 교육.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레벨 1과 2를 직접 체험하고 느낀 점들을 소개한다.
글|사진 김규용 기자(kyuyongk98@gmail.com)
写真 現代自動車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의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운전의 ‘배움’이 목적인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와 ‘즐거움’이 목적인 드라이빙 플레저다. 가벼운 마음으로 드라이빙 플레저 프로그램을 즐기러 온 적은 있지만, 오늘만큼은 다르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러 온 만큼 긴장감이 올라온다.
현대차그룹이 가진 브랜드는 3개. 그만큼 다양한 브랜드별 차종은 물론, 각 모델에 맞는 특별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이날 참여한 프로그램은 레벨 1과 레벨 2. 먼저 레벨 1은 현대 아이오닉 6와 함께했다. 실전에 투입하기 전엔 차와 프로그램에 대해 간단한 이론 교육을 받는다. ‘대중성 짙은 차로도 스포츠 드라이빙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남긴 채 코스로 향했다.
우선 다목적 코스에서 긴급 제동과 가벼운 슬라럼을 통해 차와 친밀감을 쌓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오닉 6는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기반 모델. 휠베이스가 길고, 차체 바닥에 자리한 77.4㎾h 배터리 때문에 무게도 상당하다. 하지만 최고출력 325마력, 최대토크 61.7㎏·m를 내는 두 개의 전기 모터를 바탕으로 코스를 호쾌하게 통과한다.
얼마 뒤 회생제동 모드를 레벨 0에서 i-페달 모드로 바꿨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부터 속도가 확연하게 줄어든다. 덕분에 더 높은 속도에서 긴급 제동을 하더라도 공주거리(상황을 인지한 후 실제 제동을 시작하기까지 이동한 거리)가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 회생 제동이 충전뿐만 아니라 감속에도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반대로 슬라럼에서는 속도가 과하게 줄어들어, 가속페달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가 까다로웠다.
드디어 몸이 풀렸다. 이제 서킷을 돌아볼 차례. 서킷은 앞서 배웠던 운전 스킬들을 종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기존에는 마른 노면 서킷을 두 개의 코스로 나눠 난이도별로 운영했다. 하지만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피드백을 받아 수정했다. 올해부터 모든 레벨에서 길이 3.4㎞, 16개 코너로 구성된 트랙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다만 안전을 위해 주행 속도는 레벨에 맞춰 진행한다.
초급자 프로그램인 레벨 1은 코스에 적응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 직선 구간부터 고속 선회 코너, 좌우 연속 코너, 스티어링 휠이 90° 이상 꺾이는 헤어핀 코너까지 다양한 환경을 알차게 모았다. 적응이 끝나자 제동과 가속, 회전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사람은 물론 차에게도 가혹한 환경이다. 땅에 닿는 유일한 부품인 타이어도 마찬가지. 그런데 타이어가 좀처럼 지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는 현대자동차와 한국타이어가 함께 쓰는 공간이다. 덕분에 오늘 함께한 아이오닉 6도 한국타이어의 ‘벤투스 S1 EVO 3’를 신고 있었다. 고성능 스포츠 타이어로, 코너링 성능을 보강한 점이 특징이다. 조금 무책임하게 차체를 코너에 내몰아도 쉽사리 밀리지 않고 무게를 견뎌낸다. 코너 탈출 후 연이은 가속과 감속에도 성능은 변함없다.
아쉬울 틈 없이 곧바로 이어지는 레벨 2. 레벨 1에서 안전한 운전에 집중한다면, 레벨 2는 본격적인 드라이빙의 기초를 가르친다. 난이도에 따라 파트너도 EV6 GT로 레벨 업. 출력만 생각하면 이제 막 기초를 배우기엔 과한 스펙이다. 전기 모터 2개로 최고출력 585마력, 최대토크 75.5㎏·m를 자랑하니까. 여기에 ‘벤투스 S1 EVO Z’를 조합해 접지력도 보강했다.
이번에도 프로그램의 시작은 슬라럼과 긴급제동이지만 난이도가 올라갔다. 라바콘 사이 간격을 줄이고 반드시 지나야 할 출구를 마련했다. 즉, 이전보다 정교한 핸들링이 필요하다. 제동 지점 역시 정확하게 맞춰야 한다. 부드러운 조작 대신 ‘풀 브레이킹’으로 정확한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이와 함께 제동과 회피까지 물 흐르듯 진행한다. 점점 손발이 바쁘다.
다음은 ‘킥 플레이트’ 차례. 의도적으로 뒷바퀴를 미끄러트려 오버스티어를 연출한다. 이때 재빠르게 스티어링 휠을 조작해 차체 진행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킥 플레이트 시간을 벼르고 있었다. 과거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체험했을 때, 긴장한 탓에 제 실력을 내지 못하고 실수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만회할 기회가 왔다.
인스트럭터는 무전으로 “힘을 빼고 부드럽게 돌리세요”라고 조언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힘이 과하게 들어가면 반응속도가 줄어든다. 또 스티어링 휠을 투박하게 돌리면 차체가 반대 방향으로 회전할 수 있다. 딱 필요한 만큼만 조작해야 한다. 조언 덕분일까? 싱겁게 통과하며 자신감이 올랐다. 이번엔 자세제어장치를 풀었다. 돌아간 앞머리가 방향을 되찾는 느낌이 이전보다 거칠다. 하지만 침착함만 유지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 정도다.
이어지는 ‘폭스 헌팅’은 두 사람이 장애물 코스에서 서로의 꼬리를 잡는 일종의 미니게임이다. 코스 폭이 빠듯해 가감속과 운전대 조작으로 인한 타이어 및 브레이크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그래서 스트레스로 인한 접지력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하면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언더스티어가 나기 일쑤다. 상대편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포인트다.
짧은 결투를 마치고 기아 익스피리언스 특화 프로그램인 ‘드래그 레이스’로 이동했다. 585마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고속 주회로 코스의 직선 구간을 이용해 전기차의 강력한 힘을 끄집어낸다. 주행 모드를 바꿔가며 테스트해 모드별 출력 차이도 경험할 수 있었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주행 모드와 별개로 최대 출력을 쏟아내는 내연기관과 다르다.
역시 가장 인상 깊은 건 GT 모드다. 강력한 힘을 온전히 쓰기 위해 ‘런치 슬립 컨트롤 시스템’을 넣었다. 덕분에 네 바퀴가 헛돌지 않고 맹렬하게 앞을 향해 구른다. 도착 지점에서의 순간 속도는 197㎞/h. 이 프로그램에서 200㎞/h에 도달한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가속 페달을 0.1초라도 더 밟았다면 최초의 1인이 될 뻔했다.
이제 배웠던 점들을 서킷에서 활용할 시간이다. 레벨이 오른 만큼 페이스도 한결 올라갔다. 이번엔 참가자 4명이 교대로 1대1 강의를 받는다. 내 차례가 되자 코앞에서 달리는 인스트럭터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온다. 코너 진입 및 탈출 라인부터 브레이크 포인트까지 따라만 해도 차체 거동이 한결 안정적으로 변화한다.
이번에도 타이어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벤투스 S1 EVO Z는 포르쉐 파나메라와 BMW X3 M, X4 M 등에 OE 타이어로 선정된 제품. 580마력대의 높은 출력을 견디기에 충분하다. 특히 고속 코너에서 사이드월이 무너지지 않고 숄더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타이어가 무더위 속에서 아스팔트와 사투를 벌이는 반면, 실내는 여전히 시원하고 잔잔하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엔 아직 타이어에 여유가 있다.
이렇게 레벨 1·2 프로그램을 속성으로 마쳤다. 각각 140분, 190분 동안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마음도 후끈 달아오른다. 하루 뒤엔 인스트럭터가 세심하게 작성한 평가표와 이수증이 날아왔다. 각 세션별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점수를 매겨 나의 실수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고칠 수 있다. 서킷 주행 계획이 없더라도, 전문가의 평가는 분명 의미가 있다.
기억에 남는 점은 현대차·기아 프로그램 속 전기차의 비중이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과거엔 아반떼 N라인과 스팅어 등 내연기관 모델을 초급차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아이오닉 6와 아이오닉 5N, EV6 등이 주축을 이룬다. ‘전기차 경험’을 목표로 방문하기에도 좋은 구성으로 거듭났다. 전기차만의 조작법부터 주행 특성까지 단번에 익힐 수 있다.
한편, 올해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는 고객 의견을 바탕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재구성했다.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도 서킷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으며, ‘택시 드라이브’에선 N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레이스카를 체험할 수 있다. 드라이빙 센터 주변을 달리는 HMG 시닉 드라이브는 3시간으로 넉넉하게 늘어났다. 현대차 오너들이 자신의 차로 참여하는 ‘현대 오너스 트랙데이’도 신설했다. 한층 풍성하고 알찬 프로그램 덕분에, 티켓팅 난이도는 앞으로도 쉽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