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8~19일, 독일 프리올츠하임에서 포르쉐가 전 세계 언론 대상으로 더 뉴 타이칸 기술 설명회와 사전 공개, 동승 체험을 진행했다. 포르쉐는 “역사상 가장 큰 폭의 제품 업데이트”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뉴 타이칸은 엔진 포르쉐 몇 세대는 거쳐야 가능할 진화를 단숨에 해치웠다. 엠바고와 일정에 밀려 영상으로만 전했던 이야기를 글로 정리했다.
프리올츠하임(독일)=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포르쉐 AG, 김기범
포르쉐의 새 역사 쓴 순수 전기차
하필 출국 전날 항공편 취소 연락이 왔다. 새로 예약하면서 경유지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이스탄불로 바뀌었다. 마침 튀르키예어로 ‘젊은 말’이란 이름의 차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공교롭게 여정 목적지의 상징 동물 또한 말이었다. 지난 1월 18~19일, 독일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포르쉐 ‘더 뉴 타이칸(The New Taycan)’을 세계 최초로 만났다.
타이칸은 2019년 데뷔한 포르쉐 최초의 순수 전기차다. 스포츠카의 대명사, 포르쉐의 전기차 시장 진출은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당시 이미 빵빵한 성능으로 후발주자와 간격 벌린 테슬라와의 경쟁도 관전 포인트였다. 포르쉐는 연소와 폭발의 기계적 감성으로 팬들을 사로잡아 온 브랜드. 그래서 더욱, 과연 어떤 매력의 전기차로 승부할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예고편은 있었다. 포르쉐가 2015년 공개한 ‘미션 E 콘셉트’였다. 이후 포르쉐는 콘셉트 카를 양산 버전으로 구체화했다. 브랜드의 고향, 독일 슈투트가르트 주펜하우젠에 7억 유로 들여 새 공장도 지었다. 청사진 제시한지 48개월 만이었다. 타이칸 공장의 연면적은 17만㎡로, 바티칸 공화국의 절반 정도다. 체적은 180만㎥로, 이집트 최대 피라미드의 75%다.
2019년 9월, 난 슈투트가르트 주펜하우젠의 타이칸 공장 기공식 현장을 찾았다. ‘4.0 생산방식’의 미래형 공장이다. 재생 가능한 자원과 바이오 가스 열병합 발전으로 얻은 전기를 쓴다. 나아가 전동화 물류차량, 폐열활용 도장공정으로 실질적 이산화탄소(CO2) 배출을 ‘0’으로 줄였다. 그 결과 ‘제로 임팩트 팩토리(Zero Impact Factory)’로 인정받았다.
이번 신형을 포르쉐는 ‘더 뉴 타이칸’이라고 정의한다. 엄밀히 따져 2세대는 아니다. 기존 타이칸의 개발명은 ‘J1’. 이제 ‘J1Ⅱ’다. 따라서 1.5세대인 셈이다. 그래서 금속 패널의 금형 바꾸는 수준의 외모 수정이 없다. 플랫폼도 포르쉐의 기존 JI 그대로다. 폭스바겐 그룹의 차세대 전기차 아키텍처 ‘PPE’로 거듭난 2세대 신형 마칸 일렉트릭과 대조적이다.
2024년 중대 전환점 맞은 포르쉐
2023년 포르쉐는 전 세계에서 약 32만 대를 팔아 역대 최고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중국 판매가 15% 꺾였다. 하지만 신흥 시장에서 16% 늘어난 판매로 상쇄했다. 덕분에 전년보다 3% 성장했다. 신흥 시장의 핵심은 ‘한국’. 지난해 연간 판매 1만 대를 넘겼다. 전년보다 26.7% 성장했다. 그 결과 포르쉐의 세계 5위 시장으로 우뚝 섰다.
더욱 인상적인 부분은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다. 2023년 포르쉐 글로벌 판매대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카이엔과 마칸이 각각 약 8만7,000대, 911 약 5만 대, 타이칸 약 4만 대고, 카이맨과 박스터가 나머지를 차지했다. 수익 많이 남는 SUV로 매출 이끄는 한편, 브랜드의 영혼과 같은 911은 물론 미래를 담은 타이칸까지 궤도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셈이다.
반면 2024년에는 기복이 꽤 있었다. 총 6개 모델 라인업 가운데 5개를 새로 출시한 이른바 ‘슈퍼 사이클’의 영향도 컸다. 신차의 세부 라인업을 기다리며 구매 미루는 수요의 영향으로 판매 곡선이 출렁였다. 실제로 포르쉐의 2024년 1~9월(1~3분기) 글로벌 판매는 22만6,026대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6.9% 줄었다. 특히 중국 판매가 29% 줄었다.
타이칸 판매도 반 토막 났다. 물론 포르쉐는 내년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 2023년 말 업데이트 이후 올해 판매가 21% 늘면서 수요를 견인 중인 카이엔이 방증이다. 물론 상황이 마냥 낙관적이진 않다. 중국과 독일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와 전 세계적 전기차 ‘캐즘(수요 둔화)’, 인증 문제로 하반기까지 늦어진 한국의 타이칸 출고 등 악재가 겹친 까닭이다.
따라서 포르쉐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응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다양한 선택지 제공, 둘째는 시장 상황에 맞춘 유연한 대응이다. 그 결과 전동화 전략을 수정했다. 2030년까지 전기차 판매를 8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거둬들였다. 또한, 마칸처럼 전기차 전용으로 바꾸려던 카이엔에 가솔린 및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도 얹기로 했다.
포르쉐 역대 최대 제품 업데이트
지난 1월 3일, 포르쉐는 더 뉴 타이칸으로 자사 전기차 랩타임 신기록을 세웠다. 도전 장소는 독일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 울창한 숲속에 각기 다른 이름 가진 코너 172개가 도사린다. 높낮이 차이가 300m에 달하고, 직선로만 2㎞ 이상이다. 20.8㎞의 코스 한 바퀴 도는 동안 차가 받는 스트레스가 일반도로 2,000㎞ 주행과 맞먹을 만큼 가혹하다.
포르쉐 개발 드라이버 라스 케언(Lars Kern)이 더 뉴 타이칸으로 끊은 랩타임은 7분 7.55초. 2022년 그가 기존 타이칸 터보 S로 달성한 기록보다 무려 26초나 빠르다. 100분의 1초 단위로 승부 나뉘는 모터스포츠에서 26초는 ‘영원과도 같은 차이’. 내가 독일을 찾았을 때는 신형 타이칸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들불처럼 번져 나간 지 약 보름 뒤였다.
공식 출시 전 ‘맛보기’ 공개인 만큼 보안이 삼엄했다. 행사장은 프리올츠하임(Friolzheim)의 ‘포르쉐 콘텐트 하우스 스튜디오’. 포르쉐 R&D 센터 자리한 바이삭(Weissach) 인근이다. 목가적 풍경 속에 생뚱맞게 서 있는 창고로, 눈에 띄는 간판조차 없다. 20여 년 전부터 포르쉐 관련 취재로 다양한 시설을 방문했다. 그런데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딴 세상이 펼쳐진다. 여느 포르쉐 사무동과 같은 테마의 인테리어가 펼쳐졌다. 건물 안쪽은 자동차 사진 및 영상 촬영을 위한 실내 스튜디오. 빛을 흡수할 시커먼 배경과 천정의 초대형 바리솔 조명이 인상적이었다. 기술 설명회는 첫째 날 분야별 기술 담당자의 프레젠테이션, 둘째 날 더 뉴 타이칸 실물 공개 및 동승 체험 순서로 진행했다.
포르쉐의 타이칸 홍보 매니저 마이크 비엔쾨터(Mayk Wienkötter)는 “역사상 가장 큰 폭의 제품 업데이트”라고 강조했다. 더 뉴 타이칸의 항목별 개발비 비율도 공개했다. 효율이 29%, 성능이 25%로, 총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밖에 디자인과 충전이 각각 16%, 인포테인먼트 11%, 컴포트 3%의 순서였다. 외형보다 내실에 초점 맞췄다는 방증이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성능 제원
때로 숫자는 백 마디 설명을 대신한다. 포르쉐 뉴 타이칸의 성능제원이 대표적이다. 더 뉴 타이칸과 더 뉴 타이칸 터보 S 기준, 최고출력은 300㎾(408마력), 700㎾(952마력)로, 각각 60, 140㎾씩 올라갔다.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4.8, 2.4초로 각각 0.5, 0.4초씩 단축했다. 항속거리는 유럽 WLTP 기준, 각각 678, 630㎞로 34~35% 늘어났다.
이번 타이칸 업데이트는 과거 포르쉐의 패턴과 차원이 다르다. 가령 타이칸 터보 S의 최고출력은 이전보다 무려 191마력 치솟았다. 기존 엔진 포르쉐의 출력 진화공식에 비춰보면, 몇 세대 간격을 단숨에 뛰어넘은 셈이다. 또한, 포르쉐조차 물리적으로 ‘제로백’의 한계로 인정했던 2.8초의 벽마저 허물었다. 전동화 시대 포르쉐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셈이다.
뒤 액슬의 전기 유닛은 직경과 길이를 각각 15, 18㎜, 무게를 10㎏ 줄였다. 동시에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109마력, 4㎏·m 더 높였다. 배터리는 삼원계 리튬이온으로, 용량을 기존 93.4에서 105㎾h로 12% 더 키웠다. 반면 무게는 625㎏으로, 이전보다 9㎏을 덜었다. 최대 전류는 충전 시 400A(암페어), 론치 컨트롤 사용 시 1,100A로 20%씩 늘었다.
끌어올린 파워에 발 맞춰 냉각 및 열 관리 시스템도 개선했다. 예컨대 총 냉각 전력을 9에서 12㎾로 높였다. 그 결과 배터리 냉각 속도를 1분 당 0.8에서 1.3℃로 개선했다. 난방 전력은 7에서 17㎾로 수직상승했다. 배터리 가열 속도 또한 1분 당 0.4에서 0.8℃로 올라갔다. 또한, 시동(전원) 끈 상태에서도 배터리 가열이 가능해 급속 충전을 돕는다.
한편, 더 뉴 타이칸은 더 이상 서스펜션에 금속 스프링을 쓰지 않는다. 적응형 에어 서스펜션이 기본이다. 기존 에어 서스펜션은 챔버 3개와 밸브 한 개 구성이었다. 반면 이제 챔버와 밸브가 두 개씩이다. 덕분에 반응시간이 한층 빠르다. 또한, 휠마다 압축과 이완 댐핑을 개별 제어한다. 그 결과 차체 기울임과 높낮이는 물론 그립 및 피칭 제어까지 아우른다.
초급속 충전 10분으로 315㎞ 주행
둘째 날, 프리올츠하임의 비밀 스튜디오에서 더 뉴 타이칸을 실물로 만났다. 프레스 사진 속 배경과 차 옆에 서니 얼떨떨했다. 헤드램프 안쪽 눈물자국 라인이 사라지고, 앞 범퍼 디자인이 단순해져 첫 인상이 한층 깔끔해졌다. 기능 개선도 뒷받침했다. 매트릭스 LED 헤드램프가 대표적이다. 기존 82픽셀에서 무려 3만2,000픽셀로, 광원이 390배 이상 늘었다.
차 안팎을 둘러본 뒤 건물 밖으로 나섰다. 섀시 엔지니어가 운전하는 더 뉴 타이칸 터보 S 동승 및 급속충전 체험을 위해서였다. 젊은 엔지니어는 우회전, 좌회전 때마다 화끈하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온통 눈 세상이었지만, 윈터 타이어 끼운 더 뉴 타이칸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급가속은 초시계 계측이 어려울 만큼 강렬하고 빨랐다.
동승 체험의 목적지는 바이삭의 포르쉐 R&D 센터. 철통 보안을 거쳐 들어서니 몇 년 사이 새 건물이 부쩍 늘었다. 해마다 기록경신에 바빴던 포르쉐의 확장세를 가늠할 단서였다. 우린 R&D 센터 내 350㎾급 초고속 충전 시설로 향했다. 배터리 잔량 26~28%에서 충전기를 물렸다. 즉시 전압은 800V, 전류는 400A, 충전 속도는 320㎾까지 치솟았다.
일정 때문에 5분 정도만 물렸는데, 배터리 잔량이 56%까지 찼다. 이날 기온은 영하 6~7℃. 더 빠른 충전의 비결은 배터리 열관리 개선이다. 더 뉴 타이칸은 초고속 충전을 위한 배터리 온도를 기존 35℃에서 15℃로 끌어 내렸다. 포르쉐가 제공한 WLTP 기준 자료는 한층 더 극적이다. 뒷바퀴 굴림 기준, 10분 충전으로 315㎞의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Semper Vivus’. ‘영원히 살아 숨 쉰다’는 뜻의 독일어다. 1901년 파리 모터쇼에서 당시 26세의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선보인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이름이다. 전기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가 더 뉴 타이칸을 본다면, 아마도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거봐, 전기가 답이었어.” 포르쉐 더 뉴 타이칸의 국내 판매 가격은 1억2,990만 원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