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모터카가 현지 시각 2일, 플래그십 모델 팬텀(Phantom)의 출시 100주년을 기념해 팬텀이 남긴 문화적 유산을 기리는 새로운 아트워크를 공개했다.
팬텀은 1925년 첫 출시 이후 현재까지 여유로운 럭셔리, 탁월한 엔지니어링, 최고급 소재, 고도로 숙련된 장인정신을 상징하며 세계 최고의 럭셔리 자동차로 여겨지고 있다. 세대를 거듭하며 팬텀은 그 어떤 차종보다 긴 역사를 이어온 모델이자, 세상을 움직인 인물들의 영향력과 세련된 취향, 독창적 개성을 드러내는 궁극의 상징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이번 작품은 1910년, ‘환희의 여신상(Spirit of Ecstasy)’을 디자인한 찰스 사이크스(Charles Sykes)가 롤스로이스 카탈로그를 위해 제작한 여섯 점의 유화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당시의 그림들은 오페라 극장, 컨트리 하우스, 골프장 등 상류층의 일상을 배경으로 롤스로이스 차량이 등장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2025년, 롤스로이스 디자이너들이 새롭게 제작한 총 8점의 기념 일러스트는 팬텀의 고객층이 100년 동안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한 세기에 걸친 팬텀의 역사는 물론, 왕족과 정치 지도자, 예술가, 산업계 주요 인사들의 동반자로 함께한 근현대사의 결정적 순간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해 온 팬텀의 문화적 의미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롤스로이스모터카 CEO 크리스 브라운리지(Chris Brownridge)는 “팬텀은 단순한 자동차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다. 세계를 비추는 동시에 그 흐름을 변화시켜 온 팬텀은 오랜 시간 동안 성공의 상징이자 권위와 명예를 드러내는 강력한 아이콘으로 자리해 왔다. 무엇보다도 팬텀은 소유주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때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움직이는 예술 작품이 되기도 했다. 음악, 정치, 예술 등 수많은 분야에서 팬텀은 역사적 순간을 함께 했으며, 이는 롤스로이스 디자이너들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었다. 이로부터 탄생한 새로운 아트워크들은 팬텀이 지닌 범세계적 영향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 되어준다”라고 전했다.
팬텀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올해, 롤스로이스는 팬텀이 남긴 영광스러운 발자취와 함께 세계 역사 속에서 팬텀이 중요한 역할을 한 특별한 이야기들을 되돌아본다.
제2차 세계대전의 명장, 버나드 로 몽고메리(Bernard Law Montgomery) 원수는 검소한 생활로 ‘스파르타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개인 이동 수단만큼은 팬텀 III 두 대를 고집했다. 그는 이미지와 상징성이 지닌 힘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팬텀을 통해 부하들에게 확고한 신뢰와 안정감을 전달하고자 했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두고 그는 팬텀을 이용해 윈스턴 처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심지어 조지 6세 국왕까지 작전 회의가 열리는 연합군 최고사령부로 직접 수송했다. 전쟁 이후에는 또 다른 팬텀을 이용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총리를 수행하기도 했다.
몽고메리의 팬텀이 현대사의 순간에 함께했다면, 팬텀은 영국 왕실과의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1948년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한 에든버러 공은 롤스로이스에 왕실 전용 팬텀 제작을 요청했고, 그 결과 ‘나바의 마하라자(Maharajah of Nabha)’라는 코드네임의 팬텀 IV가 탄생했다. 이 모델은 현재까지도 같은 이름으로 운행되고 있다.
이후 영국 왕실은 팬텀 IV 1대, 팬텀 V 2대, 팬텀 VI 2대를 국왕 전용 자동차로 주문했다. 특히 1977년 엘리자베스 2세 즉위 25주년 기념으로 헌정된 실버 주빌리 팬텀 VI는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에도 사용되었다.
중동에서도 팬텀은 국가의 탄생 순간을 함께했다. 1966년, 아랍에미리트 연방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는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흐얀 국왕은 팬텀 V를 주문했고, 이 차량은 그의 아부다비 통치자 즉위식에 사용됐다. 이후 1971년 아랍에미리트 연방 공식 창설 기념식에서 초대 영국 대사 제임스 트레드웰의 의전 차량으로도 쓰였다.
영국 외교관들도 팬텀을 공공외교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들은 도쿄, 워싱턴, 뉴델리 등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며 팬텀을 ‘부드러운 권위’의 상징으로 삼았다. 파리 주재 영국 대사였던 존 프렛웰 경은 “내 롤스로이스는 엘리제궁 방문 시 큰 도움이 됐다. 정문의 경비병들이 차를 보고 단번에 영국 대사가 도착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팬텀은 세계 어디에서나 항상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해왔다. 1959년 출시된 팬텀 V는 길이가 5.8m에 달했으며, 이 차의 등장으로 인해 영국의 주차 미터기 간격 기준이 수정됐다는 설도 있다.
모든 팬텀이 왕실이나 외교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1964년 12월, 존 레논은 비틀즈 영화 <하드 데이즈 나이트(A Hard Day’s Night)>의 성공을 기념해 팬텀 V를 주문했다. 그는 차량의 내외관 전체를 검정색으로 마감해달라고 요청했고, 롤스로이스의 제안에 따라 판테온 그릴과 환희의 여신상만 밝은 색을 유지했다. 이 차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창문 전체가 틴팅 처리된 차량 중 하나였다. 그는 “해가 떠 있는 낮에도 안에서 창문을 닫으면 여전히 클럽 안에 있는 것처럼 어두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팬텀이 전설로 남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었다. 1967년, 이 차량은 레몬 옐로우 색상에 소용돌이 치는 꽃무늬와 별자리 문양을 더한 사이키델릭 스타일로 재도색되며, 1960년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과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 사회 현상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 영국 여성이 이 차를 우산으로 내리치며 “어떻게 롤스로이스에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죠!”라고 외친 일화는 이 팬텀의 전설에 또 하나의 장을 더했다.
존 레논이 1971년 팬텀을 뉴욕으로 옮긴 후, 이 모델은 맨해튼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서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잡았다. 1977년, 그는 이 팬텀을 쿠퍼 휴잇 박물관에 기증했고, 1985년에는 경매에 출품되어 당시 로큰롤 관련 기념품 가운데 최고가인 229만9,000달러에 낙찰됐다. 이듬해 팬텀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 기증되어 현재는 로열 브리티시 컬럼비아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 팬텀은 단순한 자동차를 넘어 반문화의 상징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롤스로이스로 평가받고 있다.
존 레논의 팬텀은 크리에이티브 산업과 팬텀 간의 깊은 연관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팬텀은 시대를 이끌어온 영향력 있는 인물들에게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성공의 상징이자 자신만의 개성과 비전을 드러내는 캔버스로 존재해왔다.
할리우드 역시 팬텀을 사랑했다. 워너브라더스 공동 창립자 잭 워너를 비롯해 프레드 아스테어, 그레타 가르보, 메리 픽포드 등 저명한 배우들과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팬텀을 소유했다.
팬텀은 1964년 영화 <007 골드핑거(Goldfinger)>에서 악당 오릭 골드핑거가 금괴를 밀수하는 데 사용한 차량으로 등장했으며, 이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등장한 12대의 롤스로이스 중 하나였다. 2024년에는 영화 개봉 60주년을 기념해 검정과 노란색의 상징적인 조합을 재현한 비스포크 모델 ‘팬텀 골드핑거’가 공개되기도 했다.
1964년 개봉한 영화 <노란 롤스로이스(The Yellow Rolls-Royce)>에는 렉스 해리슨, 잉그리드 버그만, 셜리 맥클레인, 오마 샤리프 등 당대 스타들과 1931년형 팬텀 II가 함께 등장했다. 작품의 주제가 ‘Forget Domani’는 골든글로브 상을 수상했고, 이후 프랭크 시나트라와 페리 코모가 리메이크했다. 시나트라도 팬텀 오너 중 한 명이었다.
‘팝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는 1963년 팬텀 V를 구매했다. 비스포크 마이크와 필기구 세트가 포함된 맞춤 사양으로 제작된 이 차량은, 어머니가 기르던 닭들이 차량의 미러 마감 외장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쪼아 손상시키는 바람에 실버 블루 색상으로 다시 도색됐다. 엘비스는 1968년 이 차량을 자선단체에 기부했고, 이는 레너드 코언과 워즈(낫 워즈) 가 ‘Elvis’s Rolls-Royce’라는 곡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 초 팬텀 VII의 등장과 함께, 자수성가한 젊은 창업가들과 유명 인사들은 전통적 럭셔리의 틀을 깨고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팬텀을 선택했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팬텀의 소유 경험을 공유하며 또 하나의 문화 현상을 만들어냈다.
레드 카펫, 시상식, 갈라 디너 등 전 세계 이벤트에 등장하는 팬텀은 그 자체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오늘날까지도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폐막식에는 팬텀 드롭헤드 쿠페 세 대가 깜짝 등장해 전 세계 수백만 명에게 생중계되며 ‘소셜미디어 스타’로서의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됐다.
현재 8세대에 이른 팬텀은 여전히 궁극의 존재감을 지닌 자동차다. 사치 갤러리와 서펜타인 같은 문화기관, 에르메스와 아이리스 반 헤르펜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팬텀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다시 만들어간다. 매번 새롭고 더욱 정교해지는 비스포크 팬텀의 여정은 롤스로이스 역사에 또 하나의 새로운 장을 더하고 있다.
글 로드테스트 편집부(dhseo1208@gmail.com)
사진 롤스로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