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전기차 대중화 이끌 소형 SUV, ‘더 기아 EV3’

지난 7월 24일, 더 기아 EV3(The Kia EV3)를 시승했다. 기아가 전기차 대중화의 견인차 역할을 기대하는 B세그먼트 전기 SUV다. 지난달 부산모빌리티쇼에서 데뷔했다. 6월 4일부터 사전예약을 받았는데, 벌써 1만 대를 넘어섰다. 이번 시승은 서울 성수동 갤러리아 포레를 출발해 강원도 춘천을 거쳐 속초 롯데리조트까지 약 201㎞ 구간에서 진행했다.

속초=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기아, 김기범

동급 최고의 경쟁력 뽐내는 숫자

최근 전기 SUV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은 5,600억 달러(772조 원). 올해는 8,204억 달러(1,131조 원)를 예상한다. 국내에서도 전기 SUV가 풍년이다. BMW iX2, 포르쉐 마칸 일렉트릭, 일렉트릭 미니 쿠퍼, 폴스타 4, 지프 어벤저가 나왔고, 현대 아이오닉 9이 나올 예정이다.

또한, 그랜드 뷰 리서치는 2024~2030년 글로벌 전기 SUV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을 31.9%로 전망했다. 전기차 판매가 정체를 겪고 있지만, 세분화해서 살피면 우상향 중인 장르와 세그먼트도 있는 셈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전기 SUV 가운데 소형이 인기다. 지난해 매출의 53.9%를 차지했다. 한편, 소형 전기 SUV 가운덴 앞바퀴 굴림 비중이 가장 높다.

‘더 기아 EV3(이후 EV3)’는 지금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제일 핫한 장르 및 세그먼트와 오롯이 겹치는 셈이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GT-라인)는 4,300(4,310)×1,850×1,560(1,570)㎜, 휠베이스는 2,680㎜. 공차중량은 1,750~1,765㎏이다. 기아 니로 EV보다 조금 크고 무거운 대신 효율이 좋다. 기아는 EV3를 ‘기본에 충실한 전기차’로 정의했다.

근거는 동급 최고의 제원이다. 1회 충전 주행거리가 58.3㎾h 배터리의 기본형이 350㎞, 81.4㎾h의 항속형이 501㎞다. 기아 홈페이지엔 주행가능거리 계산기가 있다. 차종과 트림, 타이어, 냉난방 가동, 외부 기온, 도심과 고속도로 주행 비율을 고르면 조건별 주행가능거리가 나온다. 에어 롱레인지를 전비에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세팅하면 570㎞가 뜬다.

배터리 잔량 10% 상태에서 80%까지 채우는 350㎾급 급속충전 시간은 기본형이 29분, 롱레인지가 31분이다. EV3의 밑바탕은 400V, 앞바퀴 굴림 기반의 새로운 E-GMP다. 배터리 용량과 상관없이 성능은 같다. 최고출력은 150㎾(201마력), 최대토크는 28.9㎏·m다. 보급형 전기차로서 성능과 효율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제원이다.

EV3의 가격은 4,208만~5,108만 원이다. EV3 에어 스탠다드 2WD를 서울 거주자가 구매할 경우 국고보조금 573만 원, 지자체 보조금 150만 원을 제하면 실제 가격은 3,485만 원이다. 충청남도 거주자는 2,935만 원까지 떨어진다. 19인치 휠 끼운 풀 옵션 시승차의 서울 기준, 실제 구매가는 롱레인지 어스가 4,458만 원, GT-라인이 4,502만 원이다.

따라서 ①차 가격과 ②1회 충전거리 모두 보급형 전기차의 조건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셈이다. 지난 3월 초,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치른 ‘EV 트렌드 코리아 2024’ 관람객을 대상으로 조사한 ‘전기차 구매 시 가장 큰 고려사항’ 설문의 1~2위 항목이기도 했다. 지난 7월 24일, 서울 성수동에서 춘천을 거쳐 속초까지 편도 201㎞ 구간에서 EV3를 시승했다.

위트 담되 기능적인 안팎 디자인

이날 정오, 서울 성수동 갤러리아 포레 지하 7층 주차장에서 EV3를 만났다. 단박에 스타워즈의 ‘스톰 트루퍼(Stormtrooper)’가 떠올랐다. 만화 캐릭터로 거듭난 EV9을 보는 듯도 했다. 미래지향적이면서도 귀여웠다. 기아는 EV3의 디자인 특징을 이렇게 간추린다. ‘대담하고 강건한 외장 디자인과 생활공간 닮은 인테리어, 혁신적 연결성 기술의 조화.’

현재 기아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카림 하비브(Karim Habib)’ 부사장은 1970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나 이란에서 자랐다. 1979년 이란 혁명이 발발하면서 유럽 몇 개국을 거쳐 캐나다로 이주해 국적을 취득했다. 이후 그는 캐나다 퀘벡의 맥길 대학에서 기계공학,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ACCD)’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카림 하비브는 1998년 BMW로 가서 E60 5시리즈와 F01 7시리즈 안팎을 디자인했다. 2007년 수석 선행 디자이너로 승진했다. 2009년 메르세데스-벤츠를 거쳐 2011년 다시 BMW의 수석 디자이너로 올라섰다. 2017년 인피니티 디자인 총괄로 합류했다. 2019년 기아의 수석 부사장으로 왔다. K5와 쏘렌토 및 카니발 페이스리프트, EV9 등을 디자인했다.

그는 한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향후 기아의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람들이 붐비는 주차장에서도 한 눈에 기아라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기를 원한다. 특히 연속성이 중요하다. 디자인은 브랜드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 소비자는 브랜드를 하나의 사물처럼 표현한다. 그래서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EV3는 그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줄 기회였다. “전기차는 배터리 품을 공간 때문에 휠베이스가 넉넉하잖아요. 엔진이 필요 없으니 앞 오버행은 짧고요. 또한, 차가 무거워 큰 바퀴가 필요하죠. 이들 요소의 비율만으로도 두툼한 견고함을 만들 수 있었어요. 과거 프리미엄 자동차 제조사만이 감당할 수 있었던 요소의 조합이죠.” 카림 하비브의 설명이다.

기아 EV3는 기하학적이고 굵직하며 대담한 조형미를 바탕으로, 차급에 맞는 느낌의 방점을 찍었다. 카림 하비브는 ‘장난기(Joy)’라고 표현했다. 나 역시 동의한다. 앞서 언급한 스톰 트루퍼 또한 오리지널이 아닌, 비율을 왜곡해 축소한 미니어처 느낌에 가깝다. 실내는 간결한 구성과 재활용 PET 같은 유기적 소재로, 젊고 신선한 느낌을 물씬 불어넣었다.

다시 말해 장난기 있는 디자인과 사려 깊은 기능성의 결합이다. 카림 하비브가 앞세운 ‘반대의 연합(Opposites United)’ 철학과 일치한다. 그 뿌리는 아이작 뉴턴의 제3법칙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드시 반작용이 있는데, 그 크기는 같고 방향은 서로 반대다.’ 따라서 카림 하비브의 디자인은 서로 다른 관점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인 셈이다.

널찍하고 간결하되 편안한 실내

나의 시승차는 EV3 어스 GT-라인 롱레인지. 도어를 열면 간결하고 감각적인 실내가 드러낸다. 디자인 테마는 ‘수평과 수직의 조화’. 초박형 냉난방 시스템 덕분에 휑해진 다리 공간이 눈에 띈다. 운전석은 앉는 순간 살짝 꺼지는 느낌이 든다. 대신 안쪽 쿠션이 부드럽게 떠받친다. 등받이를 뒤로 눕힌 소위 ‘릴렉션 포지션(무중력 자세)’을 위한 쿠션 분포다.

프레임에 촘촘한 매시(그물)를 당겨 씌운 머리 받침 역시 비슷하다. 시트와 마찬가지로 반발력을 줄여 차체 움직임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했다. 눈앞엔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가 펼쳐진다. 왼쪽부터 계기판(12.3인치)과 공조 디스플레이(5인치), 인포테인먼트(12.3인치)가 이어진다. 여기에 12인치 헤드업 디스플레이까지 정보 띄울 화면이 차고 넘친다.

스위치는 최소한만 남겼다. 하지만 AI(인공지능) 비서가 웬만한 말귀를 다 알아들어 터치스크린 조작할 수고가 적었다. 지난해 대한민국 전기차 판매대수와 신차 판매 중 전기차 비율을 물었더니 약 20만 대, 10%로 정확하게 답해 영상 촬영에 도움(?)을 줬다. 난감한 질문은 능청맞게 피해간다. 기아 담당자는 “긍정적 답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운전대는 EV6과 같다. 위아래가 평평해 사각에 가깝고, 두께와 지름 모두 넉넉하다. 바람 배출구의 방향전환 레버는 타스만에 어울릴 만큼 굵고 큼직하다. SUV 느낌을 강조하기 위한 디자인 요소다. 옵션인 센터 콘솔 테이블은 앞뒤로 120㎜ 슬라이딩한다. 식음료나 태블릿 올려놓기 좋다. 그런데 표면이 매끄럽고 윤곽이 따로 없어 정차 시에만 쓸 수 있다.

그 밑에도 컵 홀더 겸 수납공간이 있다. 하지만 테두리가 낮다. 때문에 올려뒀던 소품이 굽잇길 달리면서 좌우로 쏟아졌다. 대신 기아는 상자 형태의 콘솔 수납함을 순정 액세서리로 판다. 기아 인테리어 디자인 부사장 요헨 파에센은 <월페이퍼>와의 인터뷰를 통해 “운전뿐 아니라 거실 같은 느낌을 비롯한 다양한 용도의 시나리오가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뒷좌석은 상대적으로 수수하다. 센터콘솔엔 뒤쪽 송풍구, 뒷좌석 아래쪽엔 220V 콘센트가 있다. 공간은 머리와 어깨, 무릎, 발까지 넉넉하다. 벤치 시트와 플로어 모두 평평해 가운데 자리에 앉아도 편안하다. 등받이도 6:4로 나눠 눕히거나 앞으로 접을 수 있다. 트렁크도 뒷좌석 세운 상태에서 460L로 널찍하다. 보닛 속에 숨긴 용량 25L의 프렁크도 있다.

시트 포지션이 기대보다 높고, 벨트라인은 팔꿈치를 살짝 들어 걸칠 수 있는 높이다. 덕분에 시야가 시원하다. 출발 전 배터리 잔량은 98%. 주행 가능 거리 가이드는 직전 정보 기준으로 507㎞를 띄웠다. 최소 302㎞, 최대 709㎞도 함께 표시해 흥미롭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데, B세그먼트 소형차지만 좌우 보닛 끝을 가늠하기 어려워 다소 조심스럽다.

기본에 충실해 사고 싶은 전기차

시내를 달리면서 EV3는 귀가 먹먹할 정도의 정숙성을 유지했다. 우연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멤버 스테이와 브라켓 등으로 강성을 확보하는 한편, 흡음 패드와 흡차음백, 중공사 흡음재로 노면 소음을 3㏈(데시벨) 줄였다. 앞과 1열 좌우엔 차음 유리로 풍절음을 막았다. 전기 모터와 감속기, 인버터로 구성한 PE(Power Electric) 자체의 소음도 줄였다.

EV3의 성능에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보급형 전기차의 본분에 충실하다. 물론 일상 주행의 필요충분조건은 갖췄다. EV3의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7.5초. 참고로, 기아 니로 EV는 7.8초다. 수입차 중엔 메르세데스-벤츠 E 200이나 BMW 520i와 같은 기록이다. 결코 느리지 않다. 전기차답게 초반 가속이 화끈해 좀처럼 차체 무게를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시속 100㎞를 넘어서면 빠르게 힘이 빠진다. 최고속도는 시속 170㎞. 현재로서는 섀시의 잠재력이 성능을 넉넉히 웃돈다. 꽤 빠른 템포로 굽잇길을 헤집을 때 오버 스펙으로 다진 기본기가 오롯이 도드라진다. 우직하게 버티다 임계점을 넘어서면 급격히 롤이 커지긴 한다. 그래서 더욱, 하체 짱짱히 조이고 듀얼 모터 단 EV3 GT를 상상하게 된다.

스티어링 칼럼엔 패들 시프터가 있다. 회생제동 단계를 조절할 때 쓴다. 왼쪽은 플러스, 오른쪽은 마이너스다. 한편, 왼쪽 패들 시프터를 1초 이상 당기면 ‘원 페달 드라이빙’이 막을 올린다. 일명 ‘아이 페달 3.0’이다. 회생 제동을 이용해 가속 페달 조작만으로 가감속과 완전 정차까지 지원한다. 익숙해지면 더없이 편리하다. 가속 페달 조작도 절로 섬세해진다.

스마트 회생 시스템 3.0도 요긴했다. 스티어링 휠의 오른쪽 패들을 1초 이상 당기면 시작한다. 회생제동만 활용하고, 설령 브레이크를 밟아도 기능을 유지한다. 앞차와 간격, 교차로, 속도제한 등 내비게이션 정보를 참고해 자동 감속한다. 서울~남양연구소 구간에서 기아의 반복 테스트 결과, 평균 제동회수를 무려 87%나 줄였다고. 그만큼 피로도가 낮다.

승차감은 착좌감과 비슷하다. 처음엔 부드러운데, 결코 무르지 않다. 3세대 주파수 감응형 밸브를 달아 10㎐의 고주파수 대역 감쇠력을 낮추고, 앞 서스펜션 밑에 하이드로 G 부싱을 넣어 감쇠비를 기존 0.12에서 1.15로 10배 높인 결과다. 차체 강성이 높고, 하체 밸런스가 좋아 고속 안정성도 뛰어나다. 그래서 운전하다 보면 시나브로 속도감에 무뎌진다.

이날 외부 기온은 31℃, 실내 온도는 22℃(자동)였다. 주행거리는 200.7㎞, 배터리 잔량은 61%, 연비는 6.7㎞/㎾h, 주행 가능거리는 343㎞였다. 딱히 압도적인 면은 없었으나 흠결 역시 찾기 어려웠다. 많이 팔리는 차의 특징이다. 한편, 시승차에 대한 ‘찐평가’는 기자들끼리 사적인 대화에서 나온다. 이날 유독 진지하게 구매를 고려하는 기자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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