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철든 악동, 로터스 패밀리 트랙 시승기

로터스 패밀리가 용인 스피드웨이에 모였다. 마지막 순수 내연기관 모델 에미라와 전기 SUV 엘레트라, 가장 최근 국내에 공식 출시한 에메야가 그 주인공이다. 경량 미드십 스포츠카와 900마력 고성능 순수 전기차를 번갈아 시승하면서, 로터스가 맞이한 변곡점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글 로드테스트 김규용(kyuyongk98@gmail.com)
사진 로터스자동차코리아, 김규용

급격한 변화 맞이한 로터스

로터스는 ‘무게를 줄이면 모든 구간에서 빠르다’라는 창립자 콜린 채프먼의 철학 아래 많은 스포츠카들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결국 돈이 문제다. 운전 재미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던 로터스도 적자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 다시 새로운 주인을 찾아 나선 로터스는 2017년 중국 지리자동차의 품에 안긴다. 지리는 로터스를 다시 살리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과감하게 브랜드 정체성부터 바꿨다. 경량화와 순수함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럭셔리’와 ‘EV’를 앞세웠다. 그렇게 탄생한 엘레트라는 무려 최고출력 905마력과 넉넉한 공간까지 겸비한 로터스 최초의 럭셔리 전기 SUV였다. 이어 4도어 GT 모델인 에메야까지 시장에 선보였다. 기존 팬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 에미라도 잊지 않았다.

내연기관 로터스의 피날레, 에미라

이번 행사의 시작을 함께한 에미라는 V6 3.5L 수퍼차처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가 함께 짝을 이뤄 최고출력 405마력, 최대토크 42.8㎏·m를 낸다. 엔진이 차체 한가운데 있는 미드십 레이아웃을 가지고 있다. 차체 디자인만 봐도 공력 성능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트랙에서 직접 몰아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인스트럭터의 택시 타임으로 진행했다.

피트를 나서자마자 엔진 회전수를 올리며 치고 나간다. 3,000rpm을 넘어서자 수퍼차저가 V6 엔진의 강렬한 소리에 화음을 얹는다. 열이 덜 오른 타이어 덕분에 코너에서 뒤가 살랑거리지만 인스트럭터는 아랑곳 않는다. 곧이어 직선 코스에 진입, 200㎞/h를 넘었는데도 꾸준하게 속도를 올린다. 당연히 급제동도 거뜬하다. 여기에 의외로 편안한 승차감까지. 말 그대로 일상과 트랙을 넘나드는 스포츠카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로터스의 새로운 악장, 에메야 & 엘레트라

이제 직접 운전대를 잡을 차례. 에메야가 행렬을 이루며 우리를 맞이했다. 5,139㎜의 기다란 전장과 2,005㎜ 폭을 가진 꽤 거대한 차다. 몸매도 화려하다. 유려한 곡선들 사이 8개의 통풍구는 주행 중 차체 공기 흐름을 원활하게 돕는다. 이 덕분에 주행거리를 늘리면서 각종 부품의 냉각 효율도 끌어올렸다. 그 결과 공기저항계수는 Cd 0.21에 불과하다.

실내의 완성도도 외관에 뒤처지지 않는다. 알칸타라와 PVD 알루미늄, 재활용 섬유로 만든 실 등 고급감과 지속가능성을 모두 챙긴 소재로 가득하다. 여기저기 만지고 느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해 재빨리 트랙으로 향했다. 창밖 풍경은 정신없이 바뀌는 사이에도 실내는 전기차답게 고요하다. 무전기 속 인스트럭터의 설명이 헬멧을 뚫고 선명하게 들릴 정도다.

시승차 트림은 에메야 S, 앞뒤 차축에 전기 모터를 1개씩 달아 최고출력 612마력, 최대토크 72.4㎏·m를 뿜는다. 상위 트림인 에메야 R은 최고출력 918마력이라는 어마무시한 숫자를 자랑한다. 하지만 높을 출력을 우악스럽게 뿜지는 않는다. GT, 즉 그랜드 투어러답게 부드럽고 선형적으로 속도를 덧붙여 운전이 편안하다. 전자제어 에어 서스펜션도 트랙 위 아스팔트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도록 돕는다.

고출력을 자랑하는 만큼 감속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폭 296㎜로 넓은 액티브 리어 스포일러는 평소 트렁크 리드에 숨어 있다가, 일정 속도 이상에서 튀어나와 215㎏이 넘는 다운포스를 만든다. 감속할 땐 각도를 스스로 조절해 에어 브레이크 역할까지 수행한다. 덕분에 200㎞/h가 넘는 높은 속도에서도 안정적으로 감속할 수 있다.

다음으로 엘레트라의 운전대를 잡았다. 디자인은 에메야보다 비슷하면서도 더 과격한 느낌이다. 특히 지붕 위 두 개의 곡선형 블레이드가 차의 강력한 성능을 가늠케 한다. 차체 표면 곳곳에는 라이다 4개와 레이더 6개, 카메라 7개 등 다양한 센서가 숨어있다. 아직은 소프트웨어나 관련 규제 미비로 전부 활용할 순 없지만, 추후 레벨 4 자율주행을 위한 하드웨어 밑바탕을 완성시킨 데 의미가 있다.

실내 구성은 에메야와 상당히 닮았다. 중앙의 커다란 화면으로 다양한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스티어링 휠 너머 계기판은 속도나 기어 단수, 주행 모드 등 꼭 필요한 정보만 간결하게 전달한다. 또 SUV 답게 머리 공간도 에메야보다 한결 여유롭다. 헬맷을 착용한 상태에서도 충분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첫 주행 감각 역시 에메야와 비슷하다. 급격한 움직임 속에서도 안정감이 상당하다. 용인 스피드웨이는 길고 짧은 직선과 고저차, 역뱅크까지 있는 꽤 난이도 높은 트랙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2톤이 넘는 무게를 좀처럼 느끼기 힘들었다. 비슷한 무게의 전기 SUV인 BMW iX와 비교했을 때 그 체감이 컸다.

주목할 만한 로터스의 행보

이번 행사에는 로터스 아·태 및 중동 지역 마케팅 & 홍보 총괄 람지 아탓이 함께했다. 현재 로터스가 가지고 있는 역량과 계획에 대해 짧게 소개했다.

우선 2인승 전기 하이퍼카 에바이야를 언급했다. 최고출력은 무려 2,000마력으로, 500마력 전기 모터를 네 바퀴에 심었다. 0→300㎞/h 가속 시간은 겨우 9.1초. 페라리 라페라리나 부가티 시론 등 타 브랜드 하이퍼카와 비교해도 3초 이상 빠르다. 내년에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지도 모른다며 참가자들에게 기대감을 심기도 했다.

이어 한국 시장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했다. 시장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들고 왔다고. 베이스 모델 기준으로 엘레트라가 1억4,900만 원, 에메야가 1억4,800만 원이다. 로터스의 고향 영국과 비교해도 1,000만 원 이상 저렴하다.

한편, 로터스는 브랜드 전략 전환 이후 판매 실적을 연이어 경신했다. 지리자동차가 인수한뒤 이듬해인 2018년, 글로벌 판매량 1,630대를 기록하며 7년 만에 가장 높은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 2021년엔 1,710대를 판매해 근 10년 만에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작년엔 6,970대를 글로벌 고객들에게 인도했고, 그 중 무려 63%가 전기차였다.

그런데 행사 바로 다음 날, 로터스가 갑작스레 브랜드 전략을 바꿨다. 완전 전동화 시점을 잠시 미루고 새로운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다. 아직 럭셔리카 수요층은 전기차 전환에 달갑지 않다는 게 이유다. 최근 전기차 캐즘도 이유로 꼽힌다. 추후 EREV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900V 아키텍처를 사용할 예정이다.

‘전혀 다른 브랜드 같다’. 이번 행사에서 만난 한 선배의 말이다. 개인적으론 이전 로터스에 대한 경험이 없어 깊은 공감은 어려웠다. 하지만 브랜드의 생존을 위해 과감한 쇄신을 시도했고, 지금까진 만족스런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든든한 자본을 등에 업고 새롭게 출발하는 로터스. 앞으로 그들의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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