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81㎞. 인제스피디움 메인 스트레이트 끝자락에서 확인한 속도다. 주인공은 경량 스포츠카도, 고성능 해치백도 아니다. 하이브리드의 아이콘 토요타 프리우스다. 쐐기형 디자인과 샛노란 컬러가 강렬한 분위기를 내지만, 속살은 누구보다 연비를 따지는 친환경차다. 우린 어쩌다가 일본산 하이브리드 해치백을 서킷으로 데려왔을까?
글 서동현 기자(dhseo1208@gmail.com)
사진 로드테스트
호기심의 시작은 지난 4월 다녀온 슈퍼레이스 대회였다. 이곳에서 세계 최초의 토요타 프리우스 원메이크 레이스가 열렸다. 최소한의 서킷 주행용 튜닝을 거친 5세대 프리우스 PHEV로 경쟁하는 클래스로, 개막전에선 총 18의 프리우스가 참전했다. 프리우스 PHEV 클래스는 슈퍼레이스의 모든 종목 중 가장 느리고 조용하다. 단, 보는 재미는 속도와 비례하지 않았다.
승패를 좌우하는 명확한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드라이버의 기량. 신형 프리우스는 운동성능이 상당 수준 올라갔다. 하지만 전자식 자세제어장치를 완벽하게 끌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자세제어장치는 코너에서 차의 미끄러짐을 감지해 출력을 떨어트리는 안전장치. 따라서 해당 영역에 도달하지 않으면서 최대 속도를 내도록 손과 발을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
두 번째는 배터리다. 프리우스 PHEV의 엔진+전기 모터 합산 최고출력은 223마력, 엔진 최고출력은 151마력이다. 즉 배터리 잔량에 따른 가속도 차이가 크다. 실제로 슈퍼레이스 현장에선 코너를 탈출한 레이스카가 배터리를 소모한 바로 앞 레이스카를 직선에서 손쉽게 추월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덕분에 12바퀴를 달리는 동안 치열한 장면들이 많았다.
프리우스 PHEV, 인제스피디움에 도전하다
문득 프리우스 PHEV로 서킷을 달리는 느낌은 어떨지 궁금했다. BMW M이나 메르세데스-AMG 등 전형적인 고성능 차에 대한 호기심과는 방향이 달랐다. 하이브리드 해치백을 트랙 위로 올린 배경에는 분명 토요타코리아의 자신감이 있었을 테다. 도대체 신형 프리우스에 어떤 잠재력이 숨어 있길래 원메이크 레이스를 꾸렸는지, 우리가 직접 파헤쳐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머스타드(Mustard) 컬러 프리우스 PHEV의 키를 손에 쥐었다. 몇 달 전 서울-부산 왕복 846㎞를 달리며 실연비 테스트를 했던 그 차다. 리터당 20㎞를 훌쩍 넘기는 알뜰살뜰한 차로 서킷에 들어가다니. 기름값 절약을 도와준 프리우스에게 벌써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목적지는 강원도 인제스피디움. 홈페이지를 통해 스포츠 주행 세션을 예약한 뒤 방문했다. 개인적으로 자동차 브랜드가 주최한 행사 외에 서킷 주행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라이센스 발급도 함께 신청했다. 라이센스는 안전·이론교육과 실기 주행을 마쳐야 얻을 수 있다. 나는 주행 전날 온라인으로 안전·이론교육을 미리 이수하고, 당일 약 30분의 실기 주행을 거쳐 인제스피디움 라이센스를 취득했다.
오전 11시 30분. 예약해둔 세션에 들어가기 위해 피트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전 몇 가지 포인트를 되새겼다. 시승차는 ‘순정’ 프리우스다. 슈퍼레이스에서 뛰는 레이스카는 폭 195㎜의 미쉐린 프라이머시 올 시즌 타이어 대신 225㎜ 브리지스톤 포텐자 RE-71RS 타이어를 쓴다. 마찰계수가 높은 브레이크 패드와 전용 쇼크 업소버도 들어간다. 실내 역시 출고 상태 그대로. 차체의 비틀림 강성 키울 롤 케이지도, 운전자의 몸을 붙들어 맬 버킷 시트도 없다.
한 가지 필수 준비 사항도 있다. 계기판 메뉴에 들어가 ‘긴급 제동 보조 시스템(PCS)’를 꺼야 한다. PCS는 앞 차와 순간적으로 가깝게 붙으면 스스로 제동을 거는 안전 시스템. 그러나 서킷에서 이 시스템이 작동하면 오히려 뒤에서 다가오는 차와 충돌할 위험이 있다. 해당 기능을 끄고 주변 상황을 더욱 꼼꼼하게 체크하며 달려야 한다.
탄탄한 기본기가 만드는 기대 이상의 즐거움
서킷에 진입해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확실히 시원시원하다. 미세한 휠 스핀을 낸 뒤 진득하게 달려 나간다. 평지 또는 내리막길에선 몸이 시트에 살짝 붙을 정도로 가속력이 좋다. 합산 최고출력 122마력의 구형 프리우스 프라임이 절대 따라할 수 없는 퍼포먼스다. 0→시속 100㎞ 가속 시간부터 6.7초다. 제로백 6초대 프리우스가 등장할 줄 누가 예상했을까.
코너를 빠져나오며 가속하는 느낌도 괜찮다. 엔진 피드백은 반 박자 느리다. 대신 전기 모터가 먼저 반응해 21.2㎏·m의 최대토크를 재빨리 쏟아붓는다. 곧이어 D4-S 엔진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출력을 보탠다. ‘최상의 효율’을 목표로 만난 내연기관과 전기 모터가 정 반대 방향의 시너지를 낸다. 이전 세대보다 비약적으로 상승한 힘을 또렷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다음은 핸들링. 우선 스티어링 휠을 쥐는 맛이 좋다. 신형으로 진화하면서 운전대 직경을 줄이고 계기판을 헤드업 디스플레이처럼 높게 올렸다. 양손의 이동 경로가 줄어드니 헤어핀처럼 급격한 코너를 만나도 운전대 돌리기가 수월하다. 폭이 좁은 타이어와 궁합이 좋다. 그립의 절대 한계는 낮을지언정 스티어링 휠 각도를 따라 앞머리 방향을 경쾌하게 바꾼다.
그래서 그립의 한계점에서 밀어붙이기보다, 약간의 여유를 두고 코너를 돌 때가 가장 재미있다. 욕심을 부리면 말랑말랑한 사계절 타이어만 속절없이 뜯겨나간다. 제동을 유지하며 코너에 진입하는 트레일 브레이킹을 쓰는 과정도 은근히 짜릿하다. 진입 도중 뒤꽁무니가 슬쩍 흔들리며 코너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자세를 연출한다. 친환경차 프리우스가 이런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니, 감회가 새롭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하이브리드 배터리가 바닥을 드러냈다. 배터리 용량은 13.6㎾h. 요즘의 D~E 세그먼트 PHEV 모델들만큼 넉넉하진 않다. 전력을 모두 쓰고 나면 엔진의 151마력만으로 달려야 한다. 출력 저하는 확실하게 와닿는다. 단적인 예로, 메인 스트레이트에서의 최고속도가 시속 160㎞쯤으로 줄어든다. 배터리가 충분한 상태에선 시속 181㎞까지 가속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이 언급하는 ‘구동력 저하’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자세제어장치는 OFF 버튼을 아무리 길게 눌러도 앞바퀴 슬립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조금 이른 타이밍에 가속을 시작하면 오른발과 파워트레인의 연결을 끊은 듯 힘을 뺀다. 나와 같은 서킷 초심자에게는 사고를 예방하는 안전장치. 다만 프로 선수에겐 발목의 모래주머니다.
총평
꽤 즐거웠던 시승이 끝났다. 즐거웠던 이유는 기대치가 낮아서였을 수도 있다. 일반 도로에서 아무리 잘 달려도, 서킷에선 적나라한 실체가 드러나니까. 하지만 프리우스 PHEV는 반전매력을 뽐냈다. 직진은 물론 코너에서도 의외의 모습을 보이며 더 달리고 싶게 만들었다. ‘연비만 만족스러운 재미없는 차’라는 말, 적어도 신형 프리우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5세대 프리우스의 4가지 개발 목표 중 3개는 주행 성능과 연관이 깊다. 그중 ①경쾌한 가속감과 ②의도한 대로 조종할 수 있는 핸들링은 얼마나 개선됐는지 매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요소는 ③부드러운 제동 성능인데, 서킷을 나온 뒤에야 브레이크 페달 이질감이 거의 없었단 사실을 눈치 챘다. 종종 제동 시 얇은 타이어가 관성을 버티지 못하고 밀려났을 뿐이다. 단 프리우스로 트랙을 달릴 계획이라면, 주행에 쓸 타이어 여분을 따로 챙겨오길 추천한다.
집으로 돌아갈 만큼의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프리우스는 언제나 그랬듯이 고요하게 출발 준비를 마친다. 그때 계기판의 한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18.5㎞/L’. 서울에서 출발 직전 초기화한 트립 연비가 고속도로 공인연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내가 등줄기에 땀 뻘뻘 흘리며 인제스피디움을 누비는 동안, 프리우스는 생각보다 느긋한 시간을 보낸 듯하다.
<Specification table
차종 | 토요타 프리우스 PHEV XSE |
엔진 | 직렬 4기통 가솔린+전기 모터 |
배기량 | 1,987㏄ |
최고출력 | 엔진: 151마력/6,000rpm합산 최고출력: 223마력 |
최대토크 | 엔진: 19.2㎏·m/4,400~5,200rpm전기 모터: 21.2㎏·m/0~5,509rpm |
압축비 | 14.0:1 |
연료공급장치 | 전자제어식 직분사+포트분사 |
연료탱크 | 43L |
Fuel | Petrol |
Transmission | |
Format | e-CVT |
Rolling Method | Front wheel roll |
Body | |
Format | 5도어 미니밴 |
Structure | Monocoque |
Length×Width×Height | 4,600×1,780×1,430㎜ |
Wheelbase | 2,750㎜ |
Tread forward|backward | 1,560|1,570㎜ |
Lowest ground elevation | 152 mm |
Tolerance weight | 1,605kg |
Front to back weight ratio | -. |
Rotation diameter | 10.8 m |
Coefficient of air resistance (Cd) | 0.27 |
Chassis | |
Steering | Rack and pinion |
Steering lock-to-lock | -. |
Suspension Front|Rear | MacPherson Strut|Double Wishbone |
Brake Front|Rear | Front V discBack disc |
Tyre front|rear | All 195/50 R 19 |
Wheel Front|Rear | -. |
Spaces | |
Trunk | 674 L (SAE) |
Performance | |
0→100 km/h acceleration | 6.7 seconds |
Top speed | -. |
Certified fuel economy (combined) | Engine: 19.4 km/L Electric motor: 5.6 km/kWh |
Carbon dioxide emissions | 14 g/km |
Origin | Japan |
Pricing | 49.9 mill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