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AMG는 ‘일상’과 ‘일탈’의 두 얼굴을 지닌 야수다. 튀지 않는 외모로 도로 풍경 속에 녹아 들면서도, 원할 때마다 서킷에서나 기대할 희열을 안겨준다. 묵직한 사운드처럼 감각과 반응이 적당히 뭉툭해 느긋하고 느슨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다. 지난 5월 16일, AMG 스피드웨이에서 GLB 35 4매틱과 GLC 43 4매틱, S 63 E 퍼포먼스를 경험했다.
Written by Ki-beom Kim, Editor-in-Chief (ceo@roadtest.kr)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김기범
독일 본사에서 개발한 운전 프로그램
63과 43, 35. 이 세 가지 숫자는 세 꼭지별과 만날 때 고성능의 상징 기호로 거듭난다. 해당 차종 엔진의 배기량이나 출력과는 상관없다. 메르세데스-AMG의 성능 서열을 가늠할 지표다. 뜬금없이 짝 지은 숫자는 아니다. 뿌리를 되짚어 보면 과거 비슷한 성능을 냈던 엔진의 배기량과 오롯이 겹친다. 물론 오늘날 엔진의 배기량은 ‘다운사이징’으로 훨씬 줄었다.
지난 5월 16일,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경기 용인의 AMG 스피드웨이에 기자들을 초대했다. 세 가지 다른 심장 얹은 AMG 경험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행사 제목은 ‘2024 AMG 미디어 익스피리언스 데이’. 해마다 이맘 때 치른다. 올해는 A 35 4매틱, GLB 35 4매틱, GLC 43 4매틱, GLC 43 4매틱 쿠페, S 63 E 퍼포먼스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이날 체험은 ‘AMG 드라이빙 아카데미’를 기초로 구성했다. 독일 본사에서 개발한 체계적 운전 교육 프로그램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2018년 11월 도입했다. 메르세데스-AMG 본사의 인증을 받은 국내 전문 강사진이 참가자의 수준과 특성에 따라 단계별 맞춤 교육을 진행한다. 올해 더욱 다양한 내용을 더해 ‘AMG 익스피리언스’로 거듭났다.
에버랜드와 계약 맺고 교육 무대로 이용 중인 AMG 스피드웨이는 전 세계에서 AMG 브랜딩을 적용한 최초의 서킷이다. 길이 4.346㎞의 트랙과 16개의 코너(왼쪽 9개, 오른쪽 7개)를 갖췄다. 독일의 서킷 전문 회사 틸케(Tilke)가 설계하고, 국제자동차연맹(FIA) 공인도 받았다. 트랙 너비는 11~15m, 메인 스트레이트는 456m, 백 스트레이트는 960m다.
실용적이되 재미도 챙긴 GLB 35 4매틱
이날 기자들은 두 개 조로 나눠 좌우로 나눈 트랙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에 교차로 참여했다. A조에 속한 난 먼저 GLB 35 4매틱의 운전대를 쥐었다. GLB는 2019년 6월 글로벌 데뷔했다. 요즘 유행하는 쿠페 스타일에 집착하지 않고 꽁무니를 수직으로 세워 차급 이상 널찍한 공간을 챙겼다. 외모 또한 세 꼭지별 SUV의 맏형, GLS를 빼닮아 당당하다.
GLB 35 4매틱의 엔진은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로,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짝지어 효율을 높였다. 최고출력은 306마력, 최대토크는 40.8㎏·m. AMG 스피드 시프트 DCT 8단 변속기와 ‘4매틱’을 통해 네 바퀴로 구동력을 전한다. AMG의 GLB는 세로로 쪼갠 그릴과 한껏 입을 벌린 흡기구, 큰 휠과 타이어 등으로 외모에 차별을 뒀다.
잔잔하게 몰 땐 고성능 SUV란 사실을 잊기 쉽다. 조용하고 부드럽다.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링크 방식 서스펜션은 부드러운 승차감을 유지한다. 처음 다뤄도 엊그제 몰았던 차처럼 자연스럽다. 하지만 강하게 몰아붙이면, 표정을 180° 바꿔 송곳니를 드러낸다. 4기통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청과 팝콘처럼 튀는 블러핑 사운드가 실내로 와락 들이닥친다.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5.5초. 그런데 빠르면서도 침착하다. 불안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딱 필요할 때 원하는 만큼의 희열만 맛볼 수 있다. 이 같은 성향은 이 차의 타깃을 구체적으로 좁힌다. 최고속도는 시속 250㎞, 연비는 9.5㎞/L(복합)다. GLB 35 4매틱은 편안한 출퇴근과 짜릿한 재미를 모두 원하는 이들과 궁합이 좋다. 가격은 7,710만 원이다.
외모와 파워 모두 화끈한 GLC 43 4매틱
이날 나의 두 번째 AMG는 GLC 43 4매틱이다. GLC는 지난 2년 동안 260만 대 이상 팔린 전 세계 메르세데스-벤츠의 베스트셀러. 시작점은 2008년 데뷔한 GLK인데, 이름이 곧 포지셔닝을 암시한다. 독일어 ‘Geländewagen Luxus Kompaktklasse’의 약자로, ‘SUV 럭셔리 컴팩트 클래스’라는 뜻이다. 현재 판매 중인 모델은 개발명 X254의 3세대다.
신형 GLS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최신 디자인 테마로 거듭났다. 좌우 합쳐 260만 픽셀의 디지털 라이트를 품은 헤드램프는 한층 날렵하게 다듬었다. 테일램프는 좌우를 기다랗게 이었다. 또한, 전반적인 비율이 한층 젊고 역동적이다. 차체 길이를 이전보다 55㎜ 늘리는 등 덩치도 좀 더 키웠다. 동시에 공기저항계수(Cd)는 이전보다 0.02 개선한 0.29다.
GLC의 파워트레인은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기본으로 품는다. 엔진은 개발명 M139의 직렬 4기통 2.0L 터보로, 최고출력 421마력, 최대토크 51㎏·m를 뿜는다. 35 대비 우월한 파워는 가속 페달을 밟는 즉시 와 닿는다. 가속이 확연히 더 뜨겁고 강렬하다.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4.8초, 최고속도는 시속 250㎞, 연비는 8.5㎞/L(복합)다.
하체는 의도적으로 더 탄탄하게 다질 수 있다. GLB 35 4매틱엔 없는 AMG 라이드 컨트롤 서스펜션을 갖춘 덕분이다. 최대 2.5°까지 지원하는 뒷바퀴 조향도 갖춰 코너를 보다 예리하게 도려낼 수 있다. GLB 35 4매틱이 ‘로제 떡볶이’처럼 부드러운 매운맛이라면, GLC 43 4매틱은 미뢰를 얼얼하게 자극하는 ‘불닭 볶음면’이다. 가격은 9,960만 원.
괴력과 품격의 조화, S 63 E 퍼포먼스
이날 프로그램의 구성상 아쉽게도 A 35 AMG는 운전하지 못했다. 대신 역시 동승이지만, ‘끝판 왕’급 AMG를 경험했다. 주인공은 S 63 E 퍼포먼스. V8 4.0L 트윈터보 직분사 가솔린 엔진과 전기 모터를 짝 지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PHEV)’로, 엔진의 최고출력은 612마력, 최대토크는 91.8㎏·m다. 여기에 강력한 전동화 지원군을 더했다.
190마력짜리 원통형 영구 자석 모터는 뒤 차축의 끝단인 종감속 및 차동장치 바로 앞에 자리한다. 13.1㎾h의 AMG 고성능 배터리도 갖췄다. 18마력을 내는 벨트 구동 스타터 제너레이터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400볼트 전기 시스템에 통합했다. 휘발유와 전기의 시너지로 방점을 찍은 시스템 최고출력은 802마력, 최대토크는 145.8㎏·m다.
S 63 E 퍼포먼스의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3.3초. AMG 드라이버 패키지를 옵션으로 고르면, 최고속도를 시속 290㎞까지 높일 수 있다. 뒤 차축 전기 모터의 회전수는 시속 140㎞에서 1만3,500rpm로 정점을 찍는데, 그럼 2단 변속으로 활력을 되찾아 토크를 뿜는다. AMG 다이내믹 셀렉트 주행 모드는 7가지, 회생제동은 4단계 중 고를 수 있다.
포근한 뒷좌석에 앉아 물리력 받아내는 과정은 두툼한 보호대 두르고 두들겨 맞는 느낌과 비슷했다. 정차 때마다 캘리퍼에선 연기가 펄펄 났지만, 일단 트랙으로 나서면 쌩쌩한 컨디션으로 누볐다. 게다가 이처럼 섬뜩한 성능을 품고도 최대 33㎞까진 전기차로 빙의할 수 있다. 품격과 괴력이 공존하는 비현실적 성향처럼, 가격도 2억9,900만 원으로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