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변신은 무죄, 메르세데스-AMG GT 55 4매틱+

지난 5월 말, 경기 용인의 AMG 스피드웨이에서 메르세데스-AMG GT 55 4매틱+를 시승했다. 10년 만에 나온 2세대로, 덩치를 키우는 한편 뒷좌석을 더하고 사륜구동을 기본으로 달았다. V8 4.0L 가솔린 바이터보 476마력 엔진을 품고, 0→시속 100㎞ 가속 3.9초, 최고속도 시속 295㎞를 낸다. 스펙은 무시무시한데, 이전보다 한층 편안하고 친절해졌다.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Photo Mercedes-Benz Korea

소수의 스포츠카에서 모두의 GT로

한층 성숙하고 너그러워졌다. 소수를 겨냥한 스포츠카에서 모두를 위한 그랜드 투어러(Grand Tourer)로 거듭났다. 시승의 주인공은 메르세데스-AMG 2세대 신형 GT. 1세대 출시 때 메르세데스-AMG의 어깨엔 힘이 잔뜩 들어갔다. 슬로건도 ‘레이서들의 수공예품(Handcrafted by racers)’으로 다소 오글오글했다. 자못 부담스러울 만큼 비장하고 진지했다.

2세대 GT의 ‘태세전환’이 더 극적으로 와 닿은 건 1세대와 강렬한 추억 때문이다. 2014년, 글로벌 출시 직후 미국에서 치른 국제 시승회 때 처음 만났다. 주말 정체 뚫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몬테레이까지 쏜 뒤 라구나 세카 트랙을 누볐다. 심지어 택시 드라이빙 담당은 ‘DTM(독일투어링카마스터즈)’의 황제, 베른트 슈나이더. 그야말로 ‘체력 방전’ 코스였다.

2017년엔 독일 북서부의 빌스터 베르크 서킷에서 GT-R을 포함한 GT 전 차종을 시승했다. 이날 폭우로 시승을 잠시 중단했는데, 비 그치기 무섭게 AMG 측은 타이어를 세미 슬릭으로 바꿨다. “멀리서 오셨는데 제대로 성능 느껴보시라고요.” 뿌듯해 하는 그들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두 차례 국제 시승회는 GT에 대한 AMG의 철학을 엿볼 단서였다.

1세대 GT는 ‘완벽주의’ 기질이 농후했다. 벤츠 박차고 나온 엔지니어가 세운 튜너 시절의 기백이 오롯이 살아있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원칙은 칼 같이, 한계는 최대로.’ GT는 비율뿐 아니라 성향마저 레이스카의 순수함을 꿈꿨다. 이날 난 GT를 몰 수록 겸허해졌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아서다. 롤과 피칭이 거의 없어 타이어 부담이 컸다. 핸들링도 굉장히 예민했다.

하지만 그 열매는 더없이 달콤했다. 정석에 충실한 밸런스로, 짜릿한 희열을 안겨줬다. 대신 단서가 붙었다. 접지력 변화를 면밀히 읽는 정교하고 섬세한 운전이 뒷받침할 때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재미였다. 대충 몰아도 기분 우쭐하게 만드는 911과 가장 큰 차이였다. ‘우당탕탕’ 사운드와 거친 박력으로, 차종별 특징마저 압도하는 여느 AMG와 다른 점이기도 했다.

비율에 대한 집착 대신 실용성 챙겨

지난 5월 28일, 경기 용인의 AMG 스피드웨이에서 2세대 GT를 처음 만났다. 멀리서 봐도 단박에 GT란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점점 다가설수록 이전과 차이가 오롯이 드러난다. 일단 덩치가 커졌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728×1,929×1,354㎜. 1세대보다 182㎜ 길고, 10㎜ 좁으며 66㎜ 높다. 휠베이스는 2,700㎜로, 70㎜ 더 넉넉하다.

신형은 스펙뿐 아니라 뼛속까지 완전히 새롭다. 1세대로부터 단 한 개의 부품도 물려받지 않았다. 1세대처럼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을 밑바탕 삼되 강철과 마그네슘, 섬유 복합 소재를 가스 및 레이저 용접, 구조용 접착제, 각종 리벳으로 슬기롭게 조합했다. 그 결과 이전보다 쉘 구조의 비틀림 강성은 18%, 횡방향 강성은 50%, 종방향 강성은 40% 치솟았다.

“비율이 전부인 차에요.” 201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메르세데스-벤츠 외장 디자인 총괄 마이클 레스닉의 말이었다. 1세대 GT는 20세기 초 ‘실버 애로우’란 애칭으로 이름 날린 벤츠 레이스카의 비율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보트처럼 기다란 보닛과 뒷바퀴 앞에 딱 붙은 운전석의 조화가 이채로웠다. 뒤집어 생각하면, 극적 비율을 위해 타협과 희생이 뒤따랐다.

그런데 정작 고객의 피드백은 뼈아팠다. “승차감이 단단한 데다 비좁고, 실용성도 떨어져요.” 판매량도 기대에 못 미쳤다. 결국 2세대는 극단적 비율에 대한 집착을 거뒀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구성으로 거듭났다. 가령 옵션으로 2+2 개념의 뒷좌석을 챙겼다. 키 150㎝의 승객까지 소화한다. 트렁크는 321L를 기본으로, 뒷좌석 접어 675L까지 늘릴 수 있다.

실내도 이전보다 넓고 개방적이다. 좌석을 앞으로 200㎜ 당기고, 유리창 면적 넓힌 결과다. 실내 디자인 테마는 ‘하이퍼 아날로그’. 아날로그의 기하학과 디지털 세계의 융합을 꿈꿨다. 센터터널 좌우로 버튼 나열한, 독창적이되 불편한 레이아웃은 사라졌다. 대신 디지털 계기판과 11.9인치 터치스크린, 송풍구 등 기존 벤츠에서 익숙한 조합으로 되돌아왔다.

융단 폭격 연상시키는 압도적 토크

이날 시승 무대는 AMG 스피드웨이의 풀코스. 하지만 웜업과 쿨링랩 제외하면 두 바퀴만 돌았다. 그마저도 페이스 카의 꽁무니만 좇았다. 진 빠지도록 몰았던 1세대 GT 국제 행사와 비교하면 ‘맛보기’ 시승. 그러나 1세대 GT와의 차이점 및 지향점 가늠하기엔 충분했다. 세대교체의 명분을 알리고 싶었던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의 의도는 적중한 셈이다.

시승차는 메르세데스-AMG GT 55 4매틱+. 엔진은 코드명 ‘M177’의 V8 4.0L 가솔린 바이(트윈)터보 476마력. 최대토크는 71.4㎏·m로, 1세대의 끝판왕 GT R과 맞먹는다. 나노슬라이드 코팅 실린더, V형 실린더 뱅크 사이의 터보차저 등 엔진 주요 특징은 이전 세대와 같다. 변속기는 AMG 스피드시프트 MCT 9단으로, 전보다 기어 두 개를 더 얹었다.

메르세데스-AMG GT 55 4매틱+의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3.9초. 오동통한 포르쉐 마칸 터보 일렉트릭도 3.3초에 끊는 요즘, 제원은 딱히 인상 깊지 않다. 하지만 달달 볶고 펑펑 터지는 사운드가 ‘체감성능’을 증폭시킨다. 나아가 번개처럼 빠른 응답성의 엔진 덕분에 코너와 코너 잇는 드래그레이스에서 한껏 고조된 호흡 맞춰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파워트레인 특성은 이전과 판박이다. 2,250rpm부터 와락 쏟아내는 막강 토크로 물리력을 짓이기며 맹렬히 돌진한다. 9년 전, 본지가 기획한 포르쉐 911 GT3와 메르세데스-AMG GT S 비교시승 때 강병휘 선수의 적확한 비유는 지금도 유효하다. “911 GT3이 타깃만 정확히 타격하는 정밀 폭격이라면, GT S는 주변까지 초토화시키는 융단 폭격이죠.”

7단에서 9단으로 업그레이드했지만, 변속기 성능은 여전히 아쉽다. 자동 모드로 주도권 넘기자니 적극적 판단이 아쉽고, 패들 시프터로 주무르자니 다운시프트가 굼뜨다. 초현실적으로 빠르고 영리한 포르쉐의 PDK와 비교할 때 여전히 격차가 있다. 다만, AMG 엔진의 뭉툭하고 저돌적인 토크 특성과 궁합은 좋다. 따라서 우열보단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이전보다 훨씬 다루기 쉽고 편안해

사실 신형 GT는 파워트레인보다 섀시가 훨씬 더 궁금했다. 완전히 새로운 까닭이다. 앞뒤 서스펜션은 기존 더블 위시본을 밑바탕 삼되 멀티링크로 거듭났다. 또한, 밸브 두 개씩 갖춘 총 4개의 댐퍼를 유압으로 연결한 ‘AMG 액티브 라이브 컨트롤’이 기본이다. 그 결과 승차감 및 접지력 확보의 수비 범위를 넓히고, 차체 움직임의 안정성을 한층 끌어 올렸다.

뒤 차축의 전자 제어식 LSD도 기본으로 갖췄다. 덕분에 고속 차선 변경 시 주행안정성은 물론 드리프트의 재미까지 챙겼다. 뒷바퀴 조향 장치도 달았다. 시속 100㎞를 기준으로, 저속에선 앞바퀴와 반대로 최대 2.5°, 고속에선 같은 방향으로 최대 0.7°까지 꺾는다. 게다가 신형은 4매틱(MATIC) 완전 가변형 사륜구동 시스템이 기본이다. GT 최초다.

1세대 GT는 왜곡을 혐오했다. 드라이버에게 정확한 피드백 줘야하는 레이싱카의 숙명과 닮았다. 과장 섞은 추임새로 운전자의 성취감 북돋기보단, 솔직하고 건조한 반응으로 실수를 되짚게 했다. 아득히 먼 앞바퀴의 피드백은 희미했다. 핸들링은 예민한데 운전대 답력은 가벼웠다. 장신이 아닌 이상 변속 레버 만지려면 팔을 닭 날개처럼 꺾는 수고가 뒤따랐다.

2세대 GT는 이 같은 시행착오를 바로잡은 결과다. 선수가 타고 싶은 차에서 고객이 사고 싶은 차로 과녁을 조정했다. 경주차와 싱크로율 높은 스포츠카로, 결코 911을 이길 수 없다는 현실에 눈을 떴다. 그 결과 실용성 챙기는 한편 예민한 성격을 누그러뜨려 다양한 상황에서 포용력을 높였다. 포르쉐 911의 62년 내공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참고한 셈이다.

짧은 트랙 주행 때 뒷바퀴 조향을 포함한 갖가지 기술이 뾰족이 와 닿지는 않았다. 극단적 체험의 여운은 명료했다. 쉽고 편안한 운전이었다. 양념장 하나로 수많은 메뉴 내는 터미널 앞 식당 같은 911보다, 상대적으로 개성과 존재감도 또렷하다. 이름이 운명을 좌우한다더니 진짜 GT로 거듭났다. 다만, 역설적으로 911에 맞췄던 초점 또한 다시 흐릿해졌다.

메르세데스-AMG GT 55 4매틱+의 주요 제원
엔진
FormatV8 가솔린 바이(트윈)터보
배기량3,982㏄
보어×스트로크83×92㎜
최고출력476마력(PS)/5,500~6,500rpm
최대토크71.4㎏·m/2,250~4,500rpm
압축비8.6:1
연료공급장치전자제어 직분사
연료탱크70L
권장연료고급휘발유
Transmission
FormatAMG 스피드시프트 MCT 9단
Rolling Method네 바퀴 굴림(4매틱)
Body
Format2도어 쿠페
Structure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
Length×Width×Height4,730×1,985×1,355㎜
Wheelbase2,700 mm
Tread forward|backward1,682|1,685㎜
Lowest ground elevation81㎜(유럽 기준, 최대 하중 시)
Tolerance weight1,910㎏
회전반경6.3m
Chassis
SteeringRack and pinion
Suspension Front|Rear모두 멀티링크
Brake Front|Rear모두 V디스크
Tyre front|rear앞 295/20 R 20|뒤 305/30 R 20
Performance
0→100 km/h acceleration3.9초
Top speed295㎞/h
Certified fuel economy (combined)6.5㎞/L
Carbon dioxide emissions271g/㎞
Origin독일 아팔터바흐
Pricing2억560만 원(론치에디션 2억3,66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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