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브랜드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세단. 기함이 갖춰야 할 덕목은 승객에게 ‘적은 스트레스’를 주는 데 있다. 여기엔 승차감과 소재품질 등 모든 요소가 들어간다. 그런데 전기차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주행거리가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니까. 그래서 준비했다. 최근 등장한 BMW i7과 함께, 서울-대구를 이동하며 실제 주행거리를 시험했다. 글 임정환 기자(go4468@gmail.com)사진 BMW, 임정환BMW 7시리즈, Since 1977
BMW 750iL (E32)7시리즈는 1977년 출시해 45년이 넘는 시간 동안 BMW의 기함 자리를 지켜왔다. 우리나라 시장엔 2세대 모델부터 들어왔다. 당시 1억8,000만 원의 가격에 판매했는데, 2022년 화폐가치로 6억2,000만 원의 초고가 자동차였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아우디 A8 등과 경쟁하던 7시리즈는 지난해 말, 7세대로 거듭나며 순수 전기차 모델인 i7도 같이 나왔다. I7의 경쟁상대는 메르세데스-벤츠 EQS. 벤츠는 BMW와 달리 전기차 브랜드인 ‘EQ’를 만들어 2가지 라인업을 병행하는 전략을 세웠다. EQS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VA 플랫폼을 사용해 S-클래스와 공유하는 부분은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BMW는 하나의 밑 그릇으로 엔진과 전기차를 같이 만들었다. 6세대 7시리즈부터 사용했던 CLAR 플랫폼은 더 낮은 무게중심과 큰 배터리를 위해 개량했다. 또한, 유연한 골격 설계를 통해 부드러운 승차 품질에 초점을 맞췄다.이전과 다른 독특한 존재감
i7의 첫 인상은 한 마디로 거대하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5,390×1,950×1,545㎜. 휠베이스는 3,215㎜에 달한다. 겉모습은 파란 띠를 두른 BMW 엠블럼을 빼면, 일반 7시리즈와 큰 차이 없다. 대신 공기역학 성능은 더 좋다. 엔진 버전보다 0.02 낮은 Cd 0.24의 낮은 공기저항계수를 실현했다.
큰 그릴을 감싼 ‘아이코닉 글로우’ 라이트와 스와로브스키가 만든 크리스탈 헤드램프는 멀리서 봐도 7시리즈임을 알 수 있는 더욱 강렬한 인상을 만든다. 매트릭스 LED 기술을 탑재해 야간 주행 시 앞차의 눈부심 없이 주변을 환하게 비추기도 한다.
시승차는 M스포츠 패키지를 입었다. 좀 더 공격적인 앞뒤 범퍼와 21인치 휠을 더했다. 실내 M 스포츠 전용 스티어링 휠엔 ‘부스트’ 패들을 달았다. 10초 동안 전기 모터의 최고출력을 뽑아내는 기능이다.
실내공간은 내연기관 7시리즈와 큰 차이가 없다. 전동화 파워트레인까지 품을 수 있도록 개량한 CLAR 플랫폼과 삼성SDI가 공급한 얇은 배터리 덕분이다. 화려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소재와 BMW 인터랙션 바 덕분에 눈도 즐겁다. 거대한 파노라마 디스플레이가 운전석을 에워싼 구조도 독특하다. 계기판은 12.3인치, 중앙 모니터는 14.9인치. 새로운 iDrive 8.5는 공조장치와 시트 기능조작을 직관적으로 바꿔 사용성을 개선했다.
시트도 한결 편안하다. 쿠션이 체중을 잘 분산시켜 장거리 운행에도 피로가 적다. 특히 1열 시트포지션도 여느 전기차와 비교해 낮다. 그래서 안정적이다. 뒷좌석은 이그제큐티브 라운지 시트 덕분에 다리를 펴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게다가 모든 좌석에 열선과 통풍, 마사지 기능까지 제공한다. 도어 패널에 자리한 5.5인치 터치스크린으로 뒷좌석의 모든 기능을 제어할 수도 있다.
‘즐길 거리’도 풍성하게 채웠다. B&W 사운드 시스템은 무려 36개 스피커로 1,965W(와트)의 출력을 뿜는다. 2열 천장에 자리한 31.3인치 ‘BMW 시어터 스크린’은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각종 OTT를 지원한다. 다만. 32:9 비율의 화면 때문에 일반적으로 시청하는 16:9 비율의 영상은 화면의 절반 밖에 못 쓴다. 전동과 킥모션 기능으로 열 수 있는 트렁크 용량은 500L. 모터로 인해 바닥을 높이며 일반 7시리즈보다 40L 줄었다.인증보다 넉넉한 1회 충전 주행거리
시승차는 i7 xDrive 60. 앞뒤에 전기 모터 1개씩 얹어 최고출력 544마력, 최대토크 75.6㎏·m를 네 바퀴로 보낸다. 정부공인 1회 충전 주행거리는 복합 438㎞. 삼성SDI가 공급한 리튬이온 배터리는 105.7㎾h의 넉넉한 용량을 지녔다.
이날 주행거리 테스트는 악조건에서 진행했다. 시승차엔 구름저항이 큰 윈터타이어가 들어갔다. 시승 당일 외부 기온은 평균 3.2℃, 테스트 내내 비와 눈이 섞여 내리는 기상상황에서 운행했다.
출발 직전 배터리는 100%까지 가득 채웠다. 주행가능거리는 465㎞를 모니터에 띄웠다. 공조장치는 21℃, 주행모드는 기본에 해당하는 ‘퍼스널’로 설정하고 출발했다.
약 30분가량 도심 정체구간을 지난 뒤, 이후 대부분의 구간을 법정 제한속도에 맞춰 달렸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ADAS 시스템의 완성도. 시각과 촉각, 청각까지 모두 활용해 운전자의 안전 운전을 돕는다. 작동 방법도 어렵지 않다. 운전대 왼쪽 조작 버튼을 한 차례 누르면,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유지 보조 시스템을 ‘한 방’에 활성화한다.
이날 이동 시간은 중간 휴식을 포함한 3시간 49분. 총 290㎞를 달렸으며, 특히 회생제동으로 12.8㎾h 전기를 ‘스스로’ 충전했다. 목적지인 대구에 도착해 확인한 최종 전비는 4.6㎞/㎾h, 배터리는 38%가 남았다. 주행거리는 185㎞가 남았는데, 단순 계산으론 1회 충전으로 475㎞를 달릴 수 있는 셈이다. 기상조건이 좋았다면 500㎞ 주행도 어렵지 않을 듯하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경주에 자리한 BMW 차징 스테이션에 들렀다. i7의 최대 충전속도는 195㎾로 10→80%까지 충전하는데 34분이 필요하다. 1분에 2%, 약 9㎞ 주행할 수 있는 전기를 충전하는 셈이다. 참고로 BMW 코리아는 내년 2,100기의 충전기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날 최대 충전 속도의 절반인 100㎾급 충전기로 충전해 10→80%까지 55분, 71.4㎾h를 충전해 충전비용은 27,700원이 들었다. i7이 1㎞당 82원을 지출하는데 비해 내연기관인 740i는 공인연비 기준 1㎞당 159원을 지출해야 해 i7이 내연기관보다 한층 경제적이다.운동 성능은 단연 BMW다워
충전을 끝내고 코너링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굽이진 길로 자리를 옮겼다. 무게 2.8톤, 길이 5.4m에 가까운 거대한 차체를 가졌지만, 움직임은 영락없는 BMW다. 운전자가 의도한 궤적 그대로, 부드럽게 선회한다. 주행 속도에 따라 뒷바퀴를 앞바퀴와 반대 혹은 같은 방향으로 최대 3.5˚까지 비트는 후륜조향 기술과 전자식 스태빌라이저도 한 몫 톡톡히 보탠다.
계측기로 확인한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4.7초에 불과했다. 윈터타이어가 들어갔지만, 제조사 공식제원과 같은 기록이 나와 놀랐다. xDrive 사륜구동 시스템이 타이어 접지력을 슬기롭게 꺼내 쓴 까닭이다. 그리고 안정적이다. 앞뒤 바퀴 사이에 들어간 배터리 팩이 무게중심을 더욱 바닥으로 끌어내린 결과다.
제동 감각도 훌륭하다. 무게 2.8톤의 거대한 체격을 지녔지만, 급제동을 반복해도 쉽사리 지치지 않는다. 특히 회생제동과 물리 브레이크의 구분이 확실해, 운전자가 회생제동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돕는다. 이처럼 뛰어난 운동 성능을 갖췄지만, 노면 요철은 사뿐히 ‘무시하는’ 플래그십의 본분은 잊지 않았다.총평
BMW i7의 가격은 2억1,590만 원이다. 국내에선 메르세데스-EQ EQS가 유일한 경쟁 상대다. i7은 뛰어난 주행 품질이 강점이다. 커다란 배터리를 얹은 수퍼 헤비급이지만, 움직임 특성은 긴 시간 쌓아온 BMW의 ‘맛’을 그대로 살렸다. 또한, 탑승자를 위한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기능은 앞으로 자율주행 시대를 대비한 BMW의 전략을 알 수 있는 예고편에 가까웠다. [제원표]차종BMW i7 xDrive60 M 스포츠최고출력544마력최대토크76㎏·m배터리 용량105.7㎾h (net 101.7㎾h)충전용량급속(195㎾): 34분(10~80%)완속(11㎾): 10시간 30분(0~100%)굴림방식네바퀴 굴림보디형식4도어 세단구조모노코크길이×너비×높이5,390×1,950×1,545㎜휠베이스3,215㎜트레드 앞|뒤1,714|1,735㎜최저지상고136㎜공차중량2,750㎏앞뒤 무게비율-회전직경12.3m공기저항계수(Cd)0.24섀시스티어링랙앤피니언스티어링 록투록-서스펜션 앞|뒤더블위시본|멀티링크(에어 서스펜션)브레이크 앞|뒤모두 V디스크타이어 앞|뒤앞 255/40 R 21뒤 285/35 R 21휠 앞|뒤-공간트렁크500L성능0→100㎞/h 가속4.7초최고속도시속 240㎞공인연비(복합)3.7㎞/㎾h1회 충전 주행거리438㎞원산지독일가격2억1,590만 원